얼마전 태국을 방문했을때 그곳의 건설 감리과정을 보고 감명을 받은일이
있다.

태국은 흔히 생각하기에 우리보다 못사는 나리이고 산업이나 기타 제반
분야에서 뒤떨어져 있어 건설부문 역시 그럴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물론 공법이나 장비,근로자의 수준들은 다소 뒤처지는 면이 없지않다.

그러나 그곳에 지어지는 빌딩만큼은 서울 한복판에 지어지는 어느 빌딩
보다 낫다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것이 감리의 발달인 것 같다.

유럽에서 들어와 형성된 태국의 건설문화는 철저한 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회사가 시공하고있는 로얄 차랑 쿵 프로젝트는 63층규모에
연면적만 10만평에 이르는 국제도시 방콕의 랜드마크적인 매머드급 공사
이다.

여의도 63빌딩의 두배 넓이에 달하는 대형공사인데도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체크하는 감리절차를 거쳐 한층한층 거북이 기어가듯 올라가는 것을 보면
느끼는 바가 한둘이 아니다.

현장관계자에 따르면 공사진행과정 하나한가 감리와 연결되어 있어
수도꼭지하나도 수압테스트를 하고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아야만 다음 공사를
진행할수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작은 면적을 콘크리트 타설하더라도 사용된 철근의 굵기와 간격,
배근상태등을 감리자가 직접 확인하고 나서 OK사인을 해야만 큰크리트를
주문할수 있다.

때로 편하게 넘어갈만한 일도 원칙과 절차를 지키다보니 시간이 지연되는
수도 있다.

당연히 빠른 공사진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처럼 사전 사후에 철저한 검사를 하니 불량이 일어날 일도 없고
잘못 시공되어 재공사를 할 염려도 없다.

이곳에서는 삼풍백화점같은 건물이 지어질래야 지어질수가 없는 것이다.

잇달은 대형부실사고로 "해외에서는 잘하는데 국내에서는 왜 그모양이냐"
라는 질책을 들을때마다 고개를 들지 못하면서도 막상 공사가 시작되면
"빨리빨리"를 외치며 "이정도야"하고 대충 넘어가는 악습을 떨치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배워도 한참을 배워야할 태국의 감리문화이다.

우리가 지닌 기술력이나 시공능력은 해외에서도 익히 인정을 받고 있다.

우리회사가 짓고있는 세계최고 높이의 빌딩건설을 비롯 세계적인 대형공사
수주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공사가 그 모양인 것은 무언가 부족한게 있기 때문
이다.

신기술 첨단장비 완벽한 제도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이 있으면
이를 지키는 "정신"이 아닐까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