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과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간의 19일 회동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회동이 시기만 문제로 남아 있었을뿐 이미 예고된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현대에 대한 금융제재조치가 풀리고 현대계열의 문화일보가 종합일간지로
승인받는등 정부와 현대간의 해빙무드는 이미 시작, 양자간의 회동문제도
물밑에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고위당직자는 이와관련, "참모들이 여러차례 정회장과의 회동을
건의했다"고 밝히고 "대통령도 이를 깊이 생각하면서 시기만을 엿보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14대 대선때 경쟁자였던 김대중씨와 정회장중 김대중씨가
이미 정계복귀를 선언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회장을 더 부담없이 만날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당국자는 "정회장이 통일민주당시절 김대통령의 경제참모역할을
하는등 14대 대선전까지만해도 관계가 상당히 밀접했다"고 밝히고 "14대
대선만 아니었다면 그러한 밀월관계는 계속 유지됐을 것"이라며 이번회동을
계기로 과거의 긴밀한 관계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회동은 양자간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외에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과 관련, 상당한 의미를 띠고있다는 점에서 주목
을 끌고 있다.

집권후반기의 출발을 앞두고 "화해와 포용"을 통한 "대화합정치"를 펼쳐
나가겠다는 김대통령의 국정후반기구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회장은 김대통령에게 있어 14대 대선을 통해 깊은 감정의 상처를 남겼다.

"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는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놓겠다"고 김대통령이
공언했던 대상 정회장이다.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8.15대사면에서 정회장이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 것도 14대 대선때의 이러한 악연때문이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자신의 결단으로 정회장을 사면조치한데 이어 이날
회동, 과거의 악연을 "지난간 일"로 간주했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다.

지난 8.15경축사에서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미움을 사랑으로, 분열을 통합으로, 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집권전반기에 개혁과 사정태풍을 일으켜 부정부패와 구악을 "단죄"한던
무서운 대통령의 이미지에서 탈피, 화합과 통합의 새정치를 이루는 부드러운
대통령으로의 이미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이번회동은 특히 내년 4월총선승리와 97년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범여권의
결속이 필요하다는 인식아래 "재계끌어안기"에 본격 나섰다는데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경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건희삼성회장과의 7일회동과 9일 30대그룹
총수와의 회동, 11일 경제계인사들에 대한 대사면조치에 이어 이날 정회장을
만남으로써 정부와 재계와의 화합분위기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재계와의 불편한 관계는 민심수습에 도움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권의 지지기반인 중산층및 보수계층의 불안심리를 유발, 여권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데 이로울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대통령은 이와관련 최근 대기업에 대해 상당히 유화적인 발언을 해 눈길
을 끌고있다.

김대통령은 지난 9일 30대그룹총수와의 오찬에서 "대기업은 우리경제의
견인차이고 중소기업은 뿌리"라고 언급, 종래와는 다른 대재벌관을
선보였다.

연초 "대기업의 선단식경영은 지양해야 한다"며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대기업이 앞서 나가고 정부는 뒤에서 밀어주는 식이
돼야 한다"고 말해 향후 경제운영에 있어 대기업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재계는 이같은 김대통령의 대재벌관 변화와 연이은 재계인사들과의 회동에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규제완화등을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속도가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회동으로 조성된 정부와 재계의 화합분위기가 "통일에 대비한 경제
역량의 구축"과 "세계일류국가로의 도약"이라는 국정목표에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라는데 재계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