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는 거의 모든 교수들이 테니스를 즐겼다.

그러나 지난75년에 관악으로 이사를 오고, 80년대의 격심한 학생운동
때문에 테니스는 점차 사라지고 등산이 주된 스포츠가 된 것이다.

그뒤 90년대에 들어와 학교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테니스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학부의 교수 32명중 정규적으로 테니스를 즐기는 교수는 7명정도다.

나를 포함해 이준구 이지순 김태성 이창용 이근 류근관교수 등이다.

복식시합을 주로하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력발전에 불균등이 생겨
팀의 구성이나 등위가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김수행. 이지순팀이 이준구. 김태성팀을 1년이상 압도하고
있었는데 이준구. 김태성교수가 젊음을 무기로 실력을 크게 향상시켜
엎치락뒤치락하게 되었다.

그뒤 이창용. 이근 교수가 또다른 팀을 구성해 3파전을 전개했는데
이창용교수가 지지않으려고 무리하다가 손목의 인대에 부상을 입고 당분간
테니스를 할수 없게되었다.

김태성교수는 93년 칼텍에서 1년간 강의하는 동안 그곳의 코치에게서
테니스연수를 받아 엄청난 기술향상을 이루어 돌아왔고 미국에서 단련된
류근관교수가 새로 임용되었다.

따라서 경제학부 테니스그룹의 실력은 서울대안에서는 알아줄 수준에
이르렀다.

경제학부 테니스그룹은 대체로 매우 "끈덕지다"는 평을 받고있다.

공 하나하나에 대해 신경을 쓰고 모든 공을 잡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한다.

따라서 게임 스코어 2대5를 우리는 "역전 스코어"라고 부르고 있는데
한게임을 남겨놓고 역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표현이다.

그런데 한가지 유감스러운 점은 시합을 마치고 맥주마실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그룹의 조직담당자인 이준구교수가 술알레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다.

그러나 목욕을 같이 하거나 저녁을 먹으면서 학문적인 이야기나 학교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간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고 있다는 점은 학교생활
에서 매우 큰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테니스를 통해 대화하고 있다는 것은 학자들사이의 학문적 인간적 교류를
원활하게 하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학 발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