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법과대학이나 법학과는 "법교양 있는 사회인의 배출"을
교육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법조인의 전문양성기관이 아니며 또 직업교육을
시키지도 않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실태는 이와 정반대라고 할수 있다.

법학과 등에 적을 두게되면 그때부터 강의보다 사법시험준비에 몰두하게
된다.

이같은 성향은 법학도에게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일부 사회과학계나
이공계학생에게도 있다.

우리 젊은 학구들이 왜 이렇게 사법시험을 동경하게 되는가.

그 해답은 사시에 한번 합격되면 판사 검사 변호사등 사회적 신분이
급격히 상승되고 평생 풍족한 생활을 보장받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제도나 상황은 다르지만 마치 조선조때 선비들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유일한 소망으로 삼았던 것에 비유할수 있다.

과거제도는 중국 한나라때(587년) 처음 실시됐는데 동양에서 이 제도를
수용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할수 있다.

베트남은 한때 과거가 실시된 적이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고려 광종9년
(958년)에 시작해서 조선조 고종31년(1894년)에 폐지될때까지 근 1,000년간
이나 계속되지는 못했다.

우리 역사상 흥미있는 사실은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들이 과거제도의 폐단
과 모순을 지적하면서 개혁을 주장했었다는 점이다.

유형원(1622~73)은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공거제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공거제란 종래의 병립적이던 학제와 과거제를 통합 일원화시켜 각급
학교의 우수한 학생을 누진적으로 천거케하고 최고학부인 태학이 천거하는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라는 것이다.

이같은 발상은 법학교육제도의 개혁안을 마련중인 "법조학제위원회"가
국립 전문법과대학원을 97년에 창설키로 하고 사시제도를 법과대학원
입학시험으로 대체하기로 한 결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물론 이 개혁안에도 세부적으로 문제는 있을 것이다.

가령 수많은 사시랑인을 없애기위해 응시횟수를 3회까지로 제한한다면
그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에 위반되는게 아니냐는 반론등이다.

그러나 응시를 제한하지 않고 응시횟수에 따라 대학원당국이 감점제를
실시한다면 해결될수 있는 일이다.

현행 사시제도는 지난 10년간 12만9,280여명이라는 사시낭인을 만들어냈다.

이 얼마나 국가적인 손실인가.

또 개혁안은 우리 각분야 법조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한 "공론에 의한
개혁"이라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