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이제까지 환경문제라고 하면 환경오염물질의 배출을 억제하거나 또는 잘
처리하기만 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고 정부의 환경정책도 환경오염물질
배출의 억제및 처리에 매달려왔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환경정책으로는 오늘날 우리 인류가 당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매우 강하게
제기되면서 결국 인류의 소비양태까지도 환경정책의 통제대상으로 삼을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산의 궁극적 목적은 소비요,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는 사실상
최고의 가치로 거의 불문시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작정한 소비를 지양하고 오직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소비만을 허용하자는 시대적 요청이 서서히 우리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은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채택된 "의제
21"에도 구체화되고 있다.

즉"의제 21"의 제4장은 후진국의 가난도 환경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
이지만 동시에 선진국의 무절제한 소비가 범지구적 환경문제를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임을 분명히 하면서 환경친화적 소비(지속가능소비)를 위해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노력할 것을,특히 선진국들이 앞장서 줄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지속가능 소비를 위한 국제심포지엄이
있었으며 올해는 8월말에 서울에서 같은 주제를 놓고 국제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 국제회의는 지속가능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한 구체적 정책대인들을
모색하는 장이 될것이다.

그만큼 국제사회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전에 소비자보호에 관련된 11개 시민단체들이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지속가능 소비를 위한 범국민운동을 전개할것을
결의한바 있어서 우리 시민의 환경의식도 매우 높음을 읽을수가
있었다.

비록 "의제21"이 지속가능 소비의 기치를 높이 내세우고는 있지만
사실은 과연 어떤 소비가 지속가능 소비인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소비란 소비의 절대수준 그 자체를 낮추는것을 의미할수도 있고 단지
소비양태만 바꾸는것을 의미할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소비의 절대적 수준을 낮추는 방법은 최소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자본주의체제가 가장 자랑하는것이 다른 어떤 사회체제에 비해서
개인의 물질적 소비수준을 가장 잘 높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세계가 자본주의체제로 이행하는 경향이 있음에 비추어볼때
"의제21"이 의미하는 지속가능 소비란 소비의 절대수준을 낮추지
않는 범위안에서 단지 양태만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그러한 소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의제21"이 의도하는 지속가능 소비의 핵심은 소비 단위당
환경이용량,즉 소비의 환경집약도를 줄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환경이용량이란 자연자원의 투입량을 의미할수도 있고
환경오염물질을 수용하는 자연의 자정능력의 이용정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GNP 1달러당 에너지투입량은 선진국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그 만큼 우리나라 소비의
환경집약도는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의 환경오염을 극심하게 만든 하나의 주된 요인은 환경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면서 생산된 상품의 대량생산및 소비에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만큼 우리나라 소비의 환경집약도는 높아질 것이다.

요컨대 소비의 환경집약도를 낮추는 것이 곧 "의제 21"이 촉구하는
지속가능 소비의 첩경이며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환경정책 역시 소비의
환경집약도를 핵심적 정책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소비의 환경집약도를 어떻게 낮출 것인가.

물론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금년부터 전국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한 쓰레기수거료
종량제이다.

쓰레기수거료 종량제가 실시된후 우리나라의 쓰레기 배출량이 약
40%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쓰레기 배출량이 감소한다는 것은 쓰레기처리에 우리의 자연환경을
덜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소비의 환경집약도는 낮아질 것이며 따라서 지속가능 소비에
기여하게 된다.

쓰레기수거료 종량제는 폐기물의 재활용률을 높이고 자연자원의 이용량을
줄이는데에 있어서도 상당히 큰 효과를 발생시킬 수가 있다.

물론 그런 효과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폐기물의 재활용과 자연자원절약을 위한 체계가 잘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쓰레기수거료 종량제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의 경험을 보면 종량제의 실시가 쓰레기배출량을 줄일 뿐만 아니라
폐기물 재활용률도 현저히 높이는 결과를 낳고 있음에 반해서 우리나라의
경우는 재활용률이 기대한 만큼 높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쓰레기수거료 종량제의 전면적 실시는
지속가능 소비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의제 21"이 수거료 종량제와 같은 소위 경제적 유인제도의 도입을
각국 정부에 강력히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와
같이 쓰레기수거료 종량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쓰레기수거료 종량제를 실시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의 쓰레기수거료 종량제는 좋은 전례가 될 것이다.

앞으로 제도개선이 더욱 절실히 요청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