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지폐유출규모가 당초 55만원보다 엄청난 규모인 3억5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지난주말 김명호총재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그 파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날 감사원이 전격적으로 한은과 재정경제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한데다 한이헌청와대경제수석이 "한은은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 문책범위는 예상외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건이 김총재의 사퇴로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3억
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돈이 유출됐다는 점에도 있지만 곳곳에서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탓이다.

때문에 한은과 재경원에 대한 감사원의 특감도 사건발생당시의 보고체계에
대한 진상조사성격을 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조사결과를 보면 일단 한은측이 당시 사건을 축소하려했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우선 한은 부산지점 서무직원이었던 김태영씨의 범행이 꼬리를 잡혔던
94년 4월 26일 폐기대상으로 분류되었던 7천2백65만원이 폐기되지 않은채
발견되어 김씨가 이를 훔치려 했던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한은측은
김씨의 주머니에 있던 1만원짜리 지폐 5장만을 훔치려했던 것으로 조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또 당시 부산지점의 편봉규정사과장이 김씨가 훔친돈과 빌린돈
등으로 주식거래한 내용을 기재해 놓은 노트를 발견, 박덕문지점장 강화
중부지점장등과 이를 함께 보고도 그대로 방치했다가 김씨가 면직된후인
6월초 김씨의 부인에게 돌려준 것도 한은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본점에서도 사건 축소의혹이 많다.

김씨를 만나보지도 않고 부산지점직원들의 얘기(이는 대부분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임)만 듣고 단순히 "55만원 유출사건"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축소은폐가 누구의 결정으로 이뤄졌냐는 점이다.

신복영 당시부총재나 문학모 당시담당이사(현금융결제원전무)등은 "부산
지점에서 "55만원 유출사건"으로 보고해와 그런줄만 알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설사 부산지점차원에서 축소가 이뤄졌다해도 사고발생직후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고 쉬쉬하고 넘어간 본점 감독라인도 책임을 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문책의 불똥이 재경원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당시 한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은 정동수감사관은 "윗선에는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홍재형당시 재무부장관(현부총리겸재정경제원장)이 이 사안을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해서 관리책임을 피할수 있느냐는 여전히 관심거리로 남는다.

사건의 최종개요는 경찰의 최종수사결과와 감사원의 특감결과가 나와야
알수 있다.

그러나 "아마도 줄초상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한은직원들의 말처럼
한은은 창립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육동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