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대표의 등장"과 "범여권 끌어안기".

김영삼대통령이 21일 민자당전국위원회에서 김윤환총장을 새 대표위원으로
지명한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 말이다.

김대표의 등장은 집권후반기를 맞이하는 김대통령의 국정운영스타일이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정치적 상징성을 띠고 있다는게 정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취임후 2년반동안 끊임없는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오는 과정에서 범여권
이 구심점을 잃고 와해위기에 직면한 점을 김대통령이 "위기"로 인식,
새로운 출발을 각오한 데서 나온 당정개편구상의 가시화라는 얘기다.

이같은 김대통령의 인식변화는 6.27 지방선거결과의 참패와 그후 폭넓은
여론 수렴과정을 통해 일어났다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사실 김대통령은 집권후 지난 2년반동안 여권의 한축인 당에 대해서는
그다지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정권창출에 기여했던 김종필전대표에 대해서도 예우차원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춘구대표도 "관리자" 이상의 무게를 갖지못했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민주계사무총장과 청와대정무수석실을 통해 사실상 당무를 직접 관장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민정계나 공화계인사들은 개혁의 동반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걸림돌
로 부담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6.27 선거후 일부 개혁세력만으로는 집권후반기를
순조롭게 이끌어 나가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김대중씨가 정치전면에 복귀하고 김종필씨의 자민련이 구여권세력을
잠식해 들어가면서 위기를 의식,양김을 제압하는 정국운영에 직접 관여
하겠다는 결심을 한것같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변화는 3김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자신하면서 다소
"독단적"으로 정국운영을 해왔던 이제까지와의 행보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김대통령은 우선은 김대표를 내세워 구여권세력의 불만이 높은 지역의원들
의 동요를 막으면서 내년 4월의 총선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총선승리를 바탕으로 자기책임하에 차기정권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대통령은 "새정치"를 위해 후계구도로 비쳐질지도 모르는 부담을
안으면서도 과감히 허주(신임 김대표의 아호)를 당의 전면에 배치, 대화합의
정치를 펼쳐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신시절 유정회의원을 지낸데다 5.6공의 핵심인사였던 그에 대해 야권의
비난이 일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대표로 기용한것은 양김씨에 정면대응
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라는 분석이기도 하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구상은 22일 단행될 사무총장등 당직인선에서 한층더
구체적으로 가시화될 전망이다.

총장에 구여권인사인 박준병 김종호의원등이 거명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함께 앞으로의 당직인선이나 정부각료발탁에 있어서도 "출신성분"에
개의치 않고 범여권을 망라한 인사운용 스타일을 선보일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대표의 등장은 그러나 김대통령이 의도하지않는 후계구도의 조기가시화
쪽으로 정국이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않다.

허주 본인은 대권에 별 뜻이 없다고 공사석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엄연한
민정계의 "대주주"이면서 현정권에 등을 돌리고 있는 대구.경북지역에
나름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당내역학구도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응하는 최형우 김덕룡의원등 민주계 실세들의 물밑 움직임이 따를
것이고 민정계의 또다른 한축인 이한동국회부의장의 세확산 여부도 관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것이다.

김대통령과 신임 김대표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될지 또 그에 따른 당내
역학구도가 어떻게 변화할지에 관심의 도는 점점 높아갈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