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부산지점의 폐기용 지폐 유출사건의 파장이 예상외로
크게 번지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문제의 직원이 유출한 돈은 55만원이 아니고 무려
3억5,000만원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검.경이 수사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는가하면 감사원이 한은과 재경원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고,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은의 조직개편을 포함한 개혁과 독립성 문제까지
거론되는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다.

본란은 이번 사건에 관해 며칠전 관계기관 책임자들의 은폐와 발뺌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한바 있거니와 한두푼도 아닌 엄청난 금액의 축소 은폐사실이
드러난 이상 사건처리의 방향과 내용도 달라져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건전모에 대한 분명하고 철저한 수사와
진상규명이라고 해야 한다.

의심되는 점은 지금 한두가지가 아니다.

3억5,000만원이 정말 유출액의 전부인지,공범이 없는 단독 범행인지,같은
방식으로 폐기용 지폐를 처리하는 전국의 다른 11개 본.지점은 괜찮은지,
사건발생 1년4개월이 지난 지금와서 난데없이 사건내용이 노출된 것은
어떤 경로와 까닭에서인지 등등 의문은 끝이 없다.

사건이 워낙 중대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파급될 충격이 너무 클
것이란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봉합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것은 또 다른 축소와 은폐가 될 따름이다.

그렇게 해서는 유사사건의 재발방지를 기대할수 없다.

빈틈없는 조사와 더불어 지위의고하를 막론한 관련자 전원의 처벌과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기술적 제도적으로 이같은 사건.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할 대책이다.

이번 사건을 단순히 어느 한 조직구성원의 잘못된 소행으로 치부하고
만다든지,제아무리 완벽한 장치를 갖춘대도 훔치려들면 막을 재간이
없다는 식으로 궁극적인 책임을 사람에게 돌리다 보면 아무런 대책도
나올수 없다.

연간 4조원이 넘는 현금의 폐기처리 과정이 기술적으로나 사전
사후관리등 내부 제도면에서 그토록 엉성하고 빈 구석이 많은 줄은
사실 이번 사건전엔 아무도 몰랐던게 현실이다.

한은은 물론 관련 정부기관및 민간의 전문기술자까지 머리를 짜내
재발방지 장치를 마련해야겠고 겸해서 여타 각종 금융사고 예방대책에
관해서도 차제에 진지한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한은 독립성문제이다.

한은은 지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궁지에 몰려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이번 사건은 독립성문제와는 별개이다.

따라서 사후처리도 별개여야 한다.

이번 사건을 빌미로 독립성을 더욱 약화시키거나 독립성에 손상을
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감사관실이 당시에 사건보고를 받고서도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게
재무부(지금은 재경원)의 힘이 모자라거나 한은의 강한 독립성 때문
이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몇 안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