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태

우리 나라에서는 지난 79년부터 총동화( M 2 )가 통화정책의 중심지표로
이용되어 왔다.

즉 총통화는 시중에 풀린 자금을 재는 잣대로서의 역할은 물론 경제성장
이나 물가안정 등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총통화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총통화로는 시중 유동성을 30% 정도밖에 잴 수 없을 뿐더러 총통화와
실물경제와의 관계도 불안정해져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가격변수,특히 시중금리를 통화정책의 중심지표로
사용하자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고 실제로 통화당국도 예전보다는 시중금리
의 움직임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통화당국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지만 그 유용성에
있어서 시중금리 못지 않은 새로운 후보변수가 있다.

다름 아닌 은행대출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80년대 초반부터 은행대출금의 중요성에 관해서
이론적 실증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통화당국이 통화량을 변화시키면 시중 금리가 오르거나
내리게 되고 이에 따라 투자나 소비등 실물경제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은행대출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통화정책은 시중금리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금을 통해서도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통화당국이 통화긴축을 시행하면 은행들의 대출여력이 줄어들게
되고 이에 따라 기업들,특히 은행대출에 크게 의존하는 중소기업은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없기 때문에 투자등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통화긴축에 따른 시중금리의 상승은 은행의 자금조달비용이 오르게
하고 자금을 빌려가는 사람들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을 높일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조건을 강화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도가 낮고 담보력도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
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통화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통화량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금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얘기다.

최근들어 우리 나라에서도 통화공급의 변화가 금리변동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금의 변화를 통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증분석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실증분석 결과는 통화정책상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은행대출금의 역할을 이해함으로써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파급되기까지의 시차나 금융부문과 실물부문간의
연계성을 보다 잘 파악할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화당국은 앞으로 총통화나 시중금리 뿐만 아니라 은행대출금의
움직임도 주목해야 할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통화당국이 물가나 금리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통화증가율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더라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자산구성에서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도록 유도한다면
제조업,특히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을 크게 개선시킬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금융자율화의 진전으로 통화당국이 은행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비중을 높이게 할수는 없다.

대신 대출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지준율을 낮게 적용한다거나
재할인율을 상대적으로 인하하여 대출비중을 높이도록 유인책을 마련할수
있다.

셋째 OECD가입,자본시장개방 등으로 해외부문을 통한 통화증발 압력은
더욱 커질 것이며 이에따라 명목상의 총통화증가율 수치만을 가지고는
통화정책기조가 긴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즉 통화당국은 긴축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부문을
통한 자금유입으로 총통화증가율은 높게 나타날수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은행대출의 변화추이는 통화정책기조를 판단할수 있는 훌륭한
기준이 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