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공동의 합병대책위원회 구성".

최근 한일은행의 노조위원장선거에 나선 한 후보는 자신의 정책공약
첫머리에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

"은행의 대형화,즉 합병의 필요성이 현실론으로 대두되고 있는 이상
다른 은행에 먹히지 않기위해서라도 그에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이 후보의 변이다.

각각 미국내 4위와 6위은행인 케미컬은행과 체이스맨해튼은행이
지난 28일 합병을 발표함으로써 국내은행간 합병여부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물론 국내은행간 합병논의가 새삼스러운건 결코 아니다.

벌써 몇년전부터 은행의 대형화,곧 합병의 필요성이 대두됐었다.

지난 3월 일본의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이 합병,세계 최대인
도쿄미쓰비시은행을 출범시킨다고 발표하자 "합병이 남의 일이
아니다"는 시각이 팽배했었다.

정부에서도 은행간 합병을 촉진시키위해 지난 91년 제정된 "금융기관의
합병및 전환에 관한 법률(합전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보완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그런가하면 각 은행들은 합병에 대비,내부적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자산재평가를 실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금융산업에 관심있는 사람치고 은행의 대형화필요성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정책당국자는 물론이고 각종 연구소의 연구원 은행의 임원들까지
합병의 필요성엔 찬성하고 있다.

내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 선진국수준까지 금융개방을
할수 밖에 없고 그렇게되면 대형외국은행들이 국내에 진출할 것이며
따라서 그에 걸맞는 경쟁력을 가진 은행이 탄생해야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합병의 방법론에 들어가면 문제는 뒤틀려 진다.

외국은행들과는 다른 국내은행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합병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우선은 인력문제다.

합병목적의 하나가 경쟁력강화인 이상 두 은행의 인력을 모두 수용할수는
없다.

자연 해고문제가 뒤따른다.

국내현실상 종업원 해고는 그리 쉽지 않다.

전직시킬 직장도 마땅치 않고 해고의 기준도 애매하다.

최근 합병대상으로 거론되는 은행의 직원들이 동요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기업문화와 전산기종의 차이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물론 기업문화라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그러나 인맥과 학연 지연에 따른 인사관행을 감안하면 두 은행간
화학적융화엔 시일이 걸릴수 밖에 없다.

더욱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전산기종이 다르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현재 대부분 은행들은 IBM기종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해 조흥 신한
동화은행등 일부 은행은 유니시스기종을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합병을 추진할 주체가 없다는데 있다.

은행에 주인이 없는 이상 욕을 먹으면서 "총대"를 맬 사람이 마땅치
않다.

결국 합병의 주체는 정부밖에 없다.

그러나 "합병을 유도하되 인위적인 합병은 추진하지 않겠다"는게
정부의 공식입장이다.

결국 은행간 합병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합병이 이루어지기는 상당히 힘들것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은행자율화가 진전되면서 은행간 우열이 드러나면 결국 망하는
은행이 생겨날 것이고 그렇게되면 은행간 합병도 "사건"이 아닌
자연스런 "경제현상"이 될것이라는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그 시기를 앞당기는게 정부의 몫임은 물론이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