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찌개를 조부 진지상에서나 맛보던 소시적 추억에 화제가 미치면
동년배들이 신이 나서 동조를 한다.

아마도 계란이 한계효용에 금석지감이 느껴지는 때문일 것이다.

따져보면 평생중에 극명하게 가난과 풍요의 두 시대를 함께 경험한 예도
또래의 한국인 아니면 흔치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과거의 쾌속성장 인정에는 별 이견이 없어도 미래의 지속성장과 선진권
진입 예측에는 낙관과 비관이 갈수록 엇갈린다.

안하무인이라 할만큼 "하면 된다"던 80년대까지 한국인의 자신감이 점점
졸아든다는 사실은 유쾌하지 않다.

기죽는 이유가 여럿 있겠으나 독립기념관처럼 준공날짜에 댈 욕심으로
설쳐짓다가 비새는 소리,사방에서 귀청을 찢는 붕괴의 굉음만큼 더 무서운게
없다.

성장의 의미조차 되씹어보는 조심성이 이제야 일고 있다.

일일삼성오신이 고금 불문한 미덕임에 생각이 미치면 자신감 하나로 뭉친
오기덩어리 보다는 조신으로 포장된 자신감이 더 효율적이리란 위안을 찾고
싶다.

하긴 그리도 깊던 "엽전"이란 자조가 어느새 나도 잘 살수 있다는 자신감
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30년의 성취도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다만 모든 덕성의 효용도 때가 있다.

천방지축 걸음마 배우며 잘 넘어질 아이적엔 "너 장사다"하는 부추김 이상
잘 듣는 약발이 없다.

하지만 철든 후에도 부추겨만 주면 응석받이로 자라 성인이 돼도 반편으로
종생한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성장과정은 알맞는가, 아닌가.

한마디로 막 기로에 서있다.

종전후의 여러 신생국들에 견주면 경제도 정치도 이 순간까지는 분명
앞섰다.

그러나 그 간격은 자만할 만큼 벌어진게 아니다.

1인당 GNP등 몇몇 지수론 앞섰어도 속도 자원 저력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만심의 경계다.

자만이나 자만은 자부와 다르다.

뒤의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이지만 앞의 둘은 분수넘게 으스댐을
뜻한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지정학상 사대교린을 오래 국시로 삼아온 탓에 강자에 약하고 약자는
깔보는 국민성의 일면을 부인할수 없다.

과거지사가 아니다.

피부색이 조금만 더 짙어도 아주 미개국으로 치부하는 편견이 우리 주변
에서 흔히 느껴진다.

특히 아세안 나라들을 그렇게 보는 경향은 얼마 안가 큰코 다친다.

그들도 좀더 성장하면 동맥경화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야 없겠지만, 당장
좀 낫답시고 국민적 자존심을 건드리면 깊은 원심을 심는 일이 된다.

미국내의 한.흑 갈등도 그 바탕에는 반성할 점이 깔려 있다.

그런 민족적 성숙성을 언제까지 외면하면서 일본의 오만을 성토한들 잘
먹힐리 없다.

이제 분명한 것이 있다.

이제부터 경쟁의 승부처는 기술.품질보다도 정신과 마음에 있다.

줄여서 오만이 아니라 깨끗하고 조신함 자부심이다.

그런 정신상태가 아니고는 기술개발도, 지방자치도, 민주화도, 세계화도
모두 중도폐지 아니면 아예 하지 않음만 같지 못한 마이너스다.

첫째 정직한 사회다.

정직이란 유사이래 인류특유의 생존원리로서 신뢰성과 공감 형성의 기본
이다.

이것이 없으면 정의 공정 법의 유효성이 손상된다.

이 사회를 뇌물만능의 봉투공화국으로 만들고, 백화점 붕괴 아니라 무엇이
잘못 돼도 그 이면에 고구마덩굴 같은 뇌물 고리가 원인인 것은 바로 이
정직성의 결핍이 원초다.

더구나 민주화에 비례, 중요성을 더해가는 선거가 공약 남발의 반정직을
고취하는 경향은 자체 모순이다.

그러나 약은 있다.

그 거짓과 허욕을 꿰뚫는 유권자의 판별력 향상이다.

둘째는 지도력의 분담이다.

감투지상 관존민비의 천년 넘은 가치체계 그대로, 민주주의 한다면서
벼슬자리에 과중한 권력과 기대를 집중시킨채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한국 사회다.

군주시대와 똑 같이 생사여탈의 모든 결정은 계속 청와대에 올라가 있지,
누구하나 법상의 전결권이라고 제 책임아래 행사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엄두조차 내선 안되는게 불가측의 율법이고 살아 남으려면
어겨선 안된다.

아우슈비츠 학살에 참여한 나치 친위대의 평균 인간상 분석(P 래비)에는
그들이 악마도, 사회 비적합자도 아니며 다른 상황에서라면 선량한 시민-
보통사람이었다는 결론이 적혀 있다.

세상이 복잡다단한데 한 나라의 의사결정이 분야별 전문가들에 분장되지
않고 한군데 집중되는 단세포 사회는 독일인의 나치를 받든 수치처럼 언제건
독재회귀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런 시각에서도 지자제 시작은 잘 했는데 이미 노출된 초기의 시행착오를
줄여가는 과제가 무겁다.

특히 기초단체장과 지방의회에 그지역 대학출신 진출이 눈에 띄는 것은
교육분산의 한 청신호로 소중하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함이 중요하다.

셋째 모든 일에 차례를 지키자.

줄을 서는 산업사회 시민의식에다가, 기초를 닦은 위에 집을 짓는 순서
까지를 말한다.

여기에는 지도자들의 임기내 한건주의가 가장 유죄다.

특히 통일과업은 역대 모든 대통령이 노려온 큰 건이다.

정상회담등 내 임기중 획기적인 업적을 쌓아 태종무열왕 같이 역사에
빛나려는 욕심이 문제를 풀기보다 삐걱거리게 만들 때가 많다.

끝으로 정직성에 포함되면서 구체적으로 공.사조직을 막론하고 부패하지
않는 사회를 지향하는 일이다.

그 바탕은 예외를 바라지 않는 사심없고 공평함이다.

나만은 예외라는 이기는 반도덕의 출발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