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의 일행이 그 농가로 들어가자 아낙네들이 미리 알고 있었는지 방들을
비워주었다.

그런데 방들이 많지 않은지라 아낙네들이 피해 있을 방이 따로 없어 그냥
마당같은 데서 서성거리며 수군거렸다.

"어쩌면 저렇게들 잘 생겼을까.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 같애"

"하얀 비단에 용을 수놓은 도포 봤지? 그리고 진주를 박아 만든 은띠하며,
와, 정말 멋있어.

그런데 상복을 그렇게 화려하게 차려입어도 될까"

보옥이 북정왕을 만나러 가면서 갈아입은 옷차림을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

다시 상복으로 바꿀 여유가 없어 그 차림 그대로 있었던 것이었다.

희봉이 안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서 보옥더러 잠시 나갔다 오라고
하였다.

보옥은 희봉이 쉬는 동안만이라도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그러나
싶어 진종과 함께 마당으로 나와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다녀보았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삽,가래,호미,보습 같은 농기구들이 보옥의 눈에
띄었다.

보옥은 그것들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어디에 소용되는지도 몰랐다.

마침 따라오는 하인 아이가 있어 보옥이 이것 저것 물어보니 그 아이가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저런 기구들을 가지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 곡식을 수확하는가에 대하여
들은 보옥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시구절까지 읊었다.

"그래서 옛사람의 시에 "누가 밥그릇의 밥알들이 한알 한알 농군들의
피땀인 것을 알리요"라고 하였구나"

보옥이 읊은 시는 당나라 신하요 시인인 이신의 "민농"이라는 시중의 한
구절이었다.

민농은 농사짓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니 보옥도 조금은
농사짓는 어려움을 느낀 모양이었다.

보옥이 진종과 함께 어느 허름한 방문 앞에 이르러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방 복판에 바퀴가 달린 이상한 물건이 놓여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바퀴가 아래에 붙어 있지 않고 위에 붙어 있네"

하인 아이가 그 물건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주었다.

"저건 물레라고 하는 거예요.

저 바퀴를 돌려서 실을 뽑아 천을 짜는 거죠"

"그래? 저걸로 이런 옷을 만드는 실을 짠단 말이지?"

보옥이 그 방으로 성큼 들어가 물레를 돌려보며 신기해하였다.

그때 십칠팔 세쯤 되어 보이는 처녀 하나가 달려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만질 줄도 모르는 사람이 만지면 어떡해요? 물레가 망가지잖아요"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