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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이대석좌교수(전문화부장관)는 5일 한강포럼 주최로 힐튼호텔에서
열린 초청간담회에서 "장구론"을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은 그 강연 요지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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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전통악기 장구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고 그 장구의 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없다.

설혹 지식이 있다할지라도 기술적인 측면만 알뿐이지 배경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을 시도한 경우는 전무하다.

우리는 흔히 추석달이 제일 둥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가위 보름달보다 4월 보름달이 더크게 보인다는 게 과학적인
사실이다.

사람의 느낌에서 한가위 보름달이 크게 보일뿐이다.

이렇게 많은경우 우리는 이미지에 의지해 살고있으며 그런 이미지는
사실과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자연법칙이 있는가하면 문화법칙도 동시에 존재한다.

문화란 서로가 공유하고있는 교환구조와 전달구조이며 그것을 통해
한나라의 문화를 파악할수 있다.

이것이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 예로 산업사회에서 운전사의 가치는 자동차를 잘다루는 것이었던데
반해 정보사회에서 그들의 가치는 원활한 교통정보를 아는 것일수 있다.

또 기능만 따진다면 보잉707보다 콩코드 비행기가 한수위다.

그러나 콩코드는 빠르지만 소음이 심하고 편하지가 않기때문에 보잉707의
지위를 뺏지못했다.

기능만이 아니라 서비스와 쾌적함이 동시에 고려되기 때문이다.

빠르기만하면 비행기를 선택하던 그런시대는 지났다.

이렇게 보면 여러 패러다임가운데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있다.

문화란 단순히 교양 취미로 하는게 아니라 우리들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
을 주고 세상을 읽는 독해법이다.

문화를 모르면 문맹자로 낙인찍힐수도 있다.

냉전체제가 끝난뒤 최근 2권의 책이 화제가 되고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과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이들 책이다.

"역사의 종언"은 자유시장 경제를 원칙으로한 서구민주주의가 모든
역사단계의 마지막이며 완성단계라고 얘기한다.

앞으로의 세계가 어떤 문화적 행태를 띠게되던지간에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게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또 후쿠야마는 냉전후 더이상 다른 사상이 나올 수없는 완성의 의미로서
역사의 종말을 얘기하고있다.

한편 헌팅턴은 세계시스템속에서 서구화.근대화가 보편적인 최고의
목표였지만 탈냉전시대에서 그 보편성이 무너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제도에는 유교자본주의도 있을수있고 프랑스식
자본주의도 존재할수있다.

하나의 자본주의라는 세계시스템은 더이상 존재하지않으며 이것이 바로
문화문명패러다임이다.

이속에서 우리는 국가목표를 어떻게 설정할것인가가 과제일수밖에
없다.

보편주의를 택할것인가 아니면 민족과 종교로 구분되는 원리주의를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결국 이런 엄청난 선택이 경제원리나 정치원리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원리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여기에서 "장구론"이 필요성이 대두된다.

서양과 달리 우리는 장구를 장고라고도하고 장구라고도 부르며 그
명칭을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는다.

우리식 문화전통이다.

서구에서는 절대적인 하나가 강요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조화를 강조할
뿐이다.

앞으로 세계는 통합의 시대,화합의 시대,상생의 시대,융합의 시대다.

장구의 지혜가 본격화되는 시대인 것이다.

장구의 숨은 비밀은 겉으로 보면 좌우가 똑같지만 사실은 비대칭형으로
음양원리로 만들어져있다.

좌측이 음이고 우측이 양이다.

음은 은은한 웅켜드는 소리이기에 사이즈가 크고 양은 팽팽하고 열린
소리가 내기때문에 약간작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게함으로써 화합을 시키는,이질적인 요소를
비대칭형으로 만들어 화합시키는 것이 장구의 조화다.

그러나 북의 소리는 어느쪽을 두르려도 똑같은 화합이 아니라 절대적인
음이다.

하나를 죽이려 하지않고 두개 모두를 살려 하나가 되게하는 게
장구인 것이다.

서로 다른 두소리를 상생원리에 의해 화합시키는 음양의 조화를
꾀하고있다.

음은 음의 소리가 있고 양은 양의 소리가 있어 서로합쳐서 하나의
소리가되면 서로 손해볼게 없는게 장구의 소리다.

두개가 합쳐서 새소리가 난다.

우리 기업이 케인스등 서구경제학자들 경제이론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그들과는 경제성장모델이 전혀 다르며 가까운 일본과도 다르다.

이제 우리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힘 근간에 있는 화합되는 제3의
파워가 무엇인지를 찾고 이를 끌고나가야 한다.

이것이 나의 장구론이다.

앞으로 21세기는 한국뿐아니라 전세계가 장구론에 의해 움직일 것이다.

복합적인 다원주의사회는 장구사회이지 결코 배타적인 사회일수없다.

화합하는 장구이론에서는 극단적이며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은
없다.

북소리는 사람을 호전적이게하지만 장고는 결코 그렇지않다.

그러나 약해보이는 장구가 발휘하는 힘은 오히려 크다.

괴테는 두갈래의 잎을 가졌지만 사실은 한갈래의 잎일뿐인 동양의
신비한 은행나무를 예찬했다.

앞으로 펼쳐질 정보사회의 주역으로서 국가와 국민,기업과 기업인
모두가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