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을 의미하는 "토"자는 초목이 땅위로 나올 때, 싹에 흙이 묻어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한다.

흙이 만물을 생육하는 기능을 갖은 주체라는 인식의 바탕에서 생겨난
글자라는 설명이다.

농경사회에서는 흙을 이토록 중시했다.

우리 조상들에게도 흙은 생활의 터전이자 고향이고 안식처였으며 죽어서
돌아갈 본향이었다.

조선왕조에서는 재상도 늙으면 벼슬을 내놓고 그만두기를 왕에게
청했는데, 그것을 "걸해골"이라고 했다.

"걸해골"이란 향리에 내려가 노부모를 봉양하며 한가하게 지내다가
고향땅에 묻히겠다는 간절한 청원이었던 셈이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고장에 가 살게되면 고생이 심하고 외로우며 알아보아
주는 이도 없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는 속담이 생겼고 "까마귀도
내땅 까마귀라면 반갑다"는 말도 나왔다.

흙과 고향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승돼 오고 있다.

"흙에서 자란 내 마음/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히 휘적시던 곳"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의 한 귀절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파아란 하늘"이라는 상징적 이상으로 그려져 누구에게나 깊은
감동을 준다.

서양의 학자들은 산업사회를 촉진시키기 위해 "현대문명은 고향을 떠나는
데서 시작된다"고 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WH 화이트는 고향을 등진 사람을 "조직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조직인이 되는 것이 맺혀있는 미국사회를 푸는 열쇠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싫든 좋든 조직인들은 조직사회속에서 작은 기계부품처럼 움직여 오늘날의
현대문명사회를 이루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고향이 숲속의 오솔길과 용달샘, 맑은 시냇물,
언덕위의 노송과 담밑에 국화가 소담스런 조용한 쉼터로 마음속에 새겨져
있다.

고향마을이 천지개벽하듯 변모했다해도 그곳은 선영아래 노부모와
일가친척이 오순도순 모여사는 추억속의 이상향일 수 밖에 없다.

이번 추석연휴에도 2000여만명이 고향을 찾아 떠날것이라고 한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전통을 대부분 잊어버렸으면서도 객지에서 부모를 찾아
보이러 떠나는 귀성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전통이 갖고있는 규범성의
큰 힘에 재삼 놀라게 된다.

워낙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탓에 걱정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르를
뵙고 송편을 빚어 차례를 지내고 장만한 음식을 친지들과 나누어 먹는
조상이 물려준 미충을 지켜가겠다는 후손들의 묵계적 합의를 누군들 막을
수 있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