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해외석학에게 듣는다 (1) .. '조바노빅'-안충영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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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8월22~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계량경제학회
7차총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 3명을 선정, 현지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격변하는 세계 경제질서와 기술혁신 시대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아갈 진로를 석학들의 진단을 통해 모색해보기 위해서다.
대담 진행은 한국 계량경제학회장을 역임한 안충영중앙대교수가 맡았다.
대담은 시리즈형식으로 정리했다.
첫 대담자인 보이언 조바노빅 미뉴욕대 교수는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인
기술 진보를 위해서는 금융산업의 효율적 발전이 절실하다"며 "한국은
새로운 경제도약을 위해서도 금융자율화 시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하고
고급 기술인력 확보를 겨냥한 교육개혁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시리즈의 첫번째로 조바노빅교수와의 대담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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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충영중앙대교수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는데는 역시 기술
요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일부 후발공업국들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한데는 선발국들이
이미 개발해 놓은 기술을 짧은 시간에 적절하게 활용한 게 주효했다는
거셴크론교수의 "후발주자의 이점론(late-comer"s advantage theory)"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슘페터의 "기술혁신이 새로운 성장의 열쇠"라는 말도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정설로 인식되고 있고요.
이런 인식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의 상관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계량경제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보이언 조바노빅 미뉴욕대교수 =기술진보가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여러가지 계량적 연구결과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로버트 솔로교수같은 사람은 1909년부터 49년까지의 미국경제
성장요인을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 기간중 미국 실질 GNP(국민총생산)증가의 87.5%가 기술진보에
기인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지요.
기술이 자본이나 노동 등 다른 생산요소와 다른 것은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신기술이 개발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곳곳에 확산되거든요.
예컨대 미국에서 어떤 기술이 개발되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다른 나라로
확산돼왔지 않습니까.
이를 뒤집어 말하면 기술진보가 벽에 부딪치면 전반적인 경제성장도
한계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지요. 궁극적으로 기술진보 없는
경제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안교수 =그러나 각국이 처한 발전 격차와 서로 다른 환경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미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는데 전략상의 편차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만.
<> 조바노빅교수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내생적
성장론( endogenous growth theory )"이란게 있지요.
이 이론은 어떤 나라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데 왜 다른 나라들은 성장이
주춤하느냐 등을 구명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각국간의 경제격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축소돼야
할텐데 현실은 그 반대로 흐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요즘 학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이론의 틀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목을 받고
있는게 연구 훈련 교육 학습 등의 분야입니다.
<> 안교수 =한국은 현재 하이테크와 정보화사회를 지향할 정도로
공업화를 심화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불과 30여년전까지만 해도 기술수준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를 면치 못했습니다.
오늘과 같은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이 택한 방법은 선진국들의 기술을
도입해 모방하는 것이었지요.
선진국에서 완제품과 자본재 등을 수입해 역분해.학습(reverse-engine
-ering)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 기술의 단순 도입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개량과
광범위한 확산,그리고 신기술 개발 없이는 더이상의 성장이 쉽지 않은
단계에 있습니다.
방금 교수께서는 기술 축적의 방법을 연구 훈련 교육 학습 등으로
분류했는데 이런 것들은 각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 발전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하는 건지,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 조바노빅교수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까요. 미국은
현재 GNP의 10%를 연구 훈련 교육분야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지식"을 축적해나가기 위해서지요.
그 가운데서 교육에 3%,응용연구에 3~3.5%,현장훈련에 3%,기초연구에는
0.5%를 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식"을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확산 효과( spill-over
effect )"를 극대화하는데 전략적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기초연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훈련 응용연구를 통해
기존 기술과 지식을 광범위하게 확산하는데 주력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안교수 =교수께서는 기술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여러가지 기존 이론을 소개한 논문을 최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논문에서는 규모의 효과를 지니는 전통 모형과 이른바 잡종형(hybrid)
모델,활용형( adoption )모델 등이 소개돼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활용형 모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던데 왜 "활용형"이
중요한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 조바노빅교수 =한국의 경우를 봐도 활용형 모델이 왜 중요한지는
금세 설명이 됩니다.
새로운 기술개발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이미 개발돼있는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경제자체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는게 현실이지요.
한국 뿐 아니라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국가들도 기술의 새 변경
( frontier )을 개척하고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 안교수 =그러나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일은 점점 큰 벽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기술보호주의가 동서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국제적 추세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경우 기술중진국을 넘어서서 이젠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런 기술보호주의 추세로 여간
어려움을 겪고있는게 아닙니다.
선진국들이 첨단기술 이전을 기피하는 바람에 다른 선진국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하기 위해 무슨 대단한 신기술이라도
개발하는 것처럼 고생을 해야 하는 형편이지요.
<> 조바노빅교수 =기술보호주의란 게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최근 각국이 기술패권을 겨냥한 경쟁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가간 기술이동이 일부 주춤해지고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거꾸로 기술이동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각종 멀티미디어 통신수단이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혁명적인 진전이 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지요.
E메일(전자우편)이나 위성방송TV 등이 등장한 덕분에 아무리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지구촌 곳곳의 정보를 얻어내는데는 별다른 불편이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완전한 정보 통제나 기밀 유지가 예전처럼 쉬울 수는
없게 됐지요.
때문에 저는 기술보호주의가 온전하게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 안교수 =어쨌든 한국도 어느 정도의 응용및 기초 연구능력을 배양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급 두뇌를 시급히 양성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신기술을 창조하기 위한
한국 나름의 노력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조바노빅교수 =물론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중요한 것이 교육시스템
이지요.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곳은 결국 학교 아닙니까. 효율적인
교육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선 교사들이 최근의 기술적 동향을 늘 파악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재교육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도 이같은 필요성을 인식해 각급 학교의 기술확산지향
교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 안교수 =자체적인 기술개발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대학의 역할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도 이런 점을 인식해서 교육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요.
대학의 교육 메커니즘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해야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교육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을까요.
<> 조바노빅교수 =대학이 유능한 교수를 확보토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서둘러야 하는 게 교수들에 대한 과보호를 시정하는
작업입니다.
한번 교수로 임용되고 나면 평생이 보장되는 식으로는 상아탑내에
무사안일주의만 팽배시킬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혁신을 자극하거나 고급 두뇌를 양산하는 역할을
대학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요.
<> 안교수 =인간자본( human capital )이 기술진보의 중요한 토대라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런데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의 상관 관계를 분석하는 교수의 모형에서는
기술과 인간자본이 분리된채 취급되고 있더군요.
이들 두 요소는 분리할 수 있는 측면도 있겠지만 동시에 서로 혼합돼
있기도 하다고 봅니다.
기술과 인간자본이란 두 요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술개발
전략의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날 수도 있을텐데요.
<> 조바노빅교수 =기술진보라는 문제를 정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두 요소를 각각 떼어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이끌어내는 건 결국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진보에
작용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시스템이 금융산업입니다.
사실 미국의 기술진보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토양은 잘 분권화돼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입니다.
예컨대 미국에선 각종 기술개발 동향에 대한 정보가 뉴욕 월 스트리트에
집중되고 있지요.
또 월가의 증권사들엔 광업에서 하이테크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기술적
특성과 동향을 줄줄이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 전문가는 확실한 신기술만 있다면 사업화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자본을 대줘 기술의 꽃을 피울 수 있게끔 지원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금융산업의 발전정도와 기술의 진전단계는 서로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기초과학 기술에선 세계 정상급이었던 구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경제적
으로 궤멸되고 만 건 금융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현재 추진중인 금융 자율화와 개방화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 안교수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월가의
금융인들이 어떻게 해서 자연과학이나 기술 분야에까지 깊은 소양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조바노빅교수 =미국 경영대학원들이 기술분야에 대한 개괄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통해 "기술적 아이디어는 대단한데 자본은 없는( great idea,no
money )" 사업가들을 어떻게 가려내 육성하느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업현장에서의 케이스 스터디를 교과과정에 집어넣어 "현장"과 이론을
잘 접목하고 있습니다.
<> 안교수 =지금 한국에서는 21세기 기술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거점기술을 국가차원에서 개발한다는 이른바 "G7(한)프로젝트"가
구상되고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의 기술선두 그룹으로 도약하려면 어느 부문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어 추진해야 하는 것일까요.
<> 조바노빅교수 =거듭 강조합니다만 역시 금융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은 지금 저축률에서는 거의 세계 정상수준에 올라서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저축자금을 기술개발로 연결시키는 장치는 역시 금융이지요.
또 정부와 민간연구소 대학 등의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서로
보완되게끔 하는 노력도 펴나가야 할 겁니다.
한국에 있어서 무척 고무적인 점은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임금이
대폭 올라가면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고급 인재들이 속속 되돌아오는
역두뇌유입( reverse brain-drain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호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 안교수 =스탠퍼드대학의 폴 크루그먼교수는 얼마전 미국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한국 대만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들(NICS)이 이룩한
고도 경제성장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을 물량적으로 투입한 결과일 뿐
기술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주목할 만한 게 없었다"며 성장신화의
허구성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성장의 엔진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 축적과 교육
훈련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인데요.
<> 조바노빅교수 =한국으로선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기술적 효율성을 끊임없이 높여나가는
것 이외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지요.
<정리=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3일자).
한국경제신문사는 지난8월22~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계량경제학회
7차총회에 참석한 해외 석학 3명을 선정, 현지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격변하는 세계 경제질서와 기술혁신 시대에 한국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 나아갈 진로를 석학들의 진단을 통해 모색해보기 위해서다.
대담 진행은 한국 계량경제학회장을 역임한 안충영중앙대교수가 맡았다.
대담은 시리즈형식으로 정리했다.
첫 대담자인 보이언 조바노빅 미뉴욕대 교수는 "경제성장의 핵심 요소인
기술 진보를 위해서는 금융산업의 효율적 발전이 절실하다"며 "한국은
새로운 경제도약을 위해서도 금융자율화 시책을 더욱 과감하게 추진하고
고급 기술인력 확보를 겨냥한 교육개혁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시리즈의 첫번째로 조바노빅교수와의 대담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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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충영중앙대교수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는데는 역시 기술
요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일부 후발공업국들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한데는 선발국들이
이미 개발해 놓은 기술을 짧은 시간에 적절하게 활용한 게 주효했다는
거셴크론교수의 "후발주자의 이점론(late-comer"s advantage theory)"이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슘페터의 "기술혁신이 새로운 성장의 열쇠"라는 말도 별다른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정설로 인식되고 있고요.
이런 인식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경제성장과 기술진보의 상관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계량경제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큰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보이언 조바노빅 미뉴욕대교수 =기술진보가 생산성 향상을 이끌어내고,
그것이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이어지고 있음은 여러가지 계량적 연구결과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로버트 솔로교수같은 사람은 1909년부터 49년까지의 미국경제
성장요인을 실증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이 기간중 미국 실질 GNP(국민총생산)증가의 87.5%가 기술진보에
기인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지요.
기술이 자본이나 노동 등 다른 생산요소와 다른 것은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신기술이 개발되면 매우 빠른 속도로 곳곳에 확산되거든요.
예컨대 미국에서 어떤 기술이 개발되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다른 나라로
확산돼왔지 않습니까.
이를 뒤집어 말하면 기술진보가 벽에 부딪치면 전반적인 경제성장도
한계에 이를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지요. 궁극적으로 기술진보 없는
경제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안교수 =그러나 각국이 처한 발전 격차와 서로 다른 환경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미 개발된 기술을 활용하는데 전략상의 편차가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만.
<> 조바노빅교수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내생적
성장론( endogenous growth theory )"이란게 있지요.
이 이론은 어떤 나라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데 왜 다른 나라들은 성장이
주춤하느냐 등을 구명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각국간의 경제격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축소돼야
할텐데 현실은 그 반대로 흐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요즘 학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타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이론의 틀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주목을 받고
있는게 연구 훈련 교육 학습 등의 분야입니다.
<> 안교수 =한국은 현재 하이테크와 정보화사회를 지향할 정도로
공업화를 심화시키는데 성공했지만 불과 30여년전까지만 해도 기술수준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를 면치 못했습니다.
오늘과 같은 경제성장을 위해 한국이 택한 방법은 선진국들의 기술을
도입해 모방하는 것이었지요.
선진국에서 완제품과 자본재 등을 수입해 역분해.학습(reverse-engine
-ering)하는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존 기술의 단순 도입이 아니라 기존 기술의 개량과
광범위한 확산,그리고 신기술 개발 없이는 더이상의 성장이 쉽지 않은
단계에 있습니다.
방금 교수께서는 기술 축적의 방법을 연구 훈련 교육 학습 등으로
분류했는데 이런 것들은 각 나라의 경제 사회 문화 발전 수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해야 하는 건지,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 조바노빅교수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까요. 미국은
현재 GNP의 10%를 연구 훈련 교육분야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지식"을 축적해나가기 위해서지요.
그 가운데서 교육에 3%,응용연구에 3~3.5%,현장훈련에 3%,기초연구에는
0.5%를 쓰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지식"을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확산 효과( spill-over
effect )"를 극대화하는데 전략적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기초연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훈련 응용연구를 통해
기존 기술과 지식을 광범위하게 확산하는데 주력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안교수 =교수께서는 기술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여러가지 기존 이론을 소개한 논문을 최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논문에서는 규모의 효과를 지니는 전통 모형과 이른바 잡종형(hybrid)
모델,활용형( adoption )모델 등이 소개돼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활용형 모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던데 왜 "활용형"이
중요한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 조바노빅교수 =한국의 경우를 봐도 활용형 모델이 왜 중요한지는
금세 설명이 됩니다.
새로운 기술개발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이미 개발돼있는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경제자체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는게 현실이지요.
한국 뿐 아니라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국가들도 기술의 새 변경
( frontier )을 개척하고 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 안교수 =그러나 기존 기술을 활용하는 일은 점점 큰 벽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기술보호주의가 동서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국제적 추세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지요.
한국의 경우 기술중진국을 넘어서서 이젠 기술집약적 산업구조를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이런 기술보호주의 추세로 여간
어려움을 겪고있는게 아닙니다.
선진국들이 첨단기술 이전을 기피하는 바람에 다른 선진국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술을 자력으로 개발하기 위해 무슨 대단한 신기술이라도
개발하는 것처럼 고생을 해야 하는 형편이지요.
<> 조바노빅교수 =기술보호주의란 게 어제 오늘의 얘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최근 각국이 기술패권을 겨냥한 경쟁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가간 기술이동이 일부 주춤해지고 있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거꾸로 기술이동을 촉진시키는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각종 멀티미디어 통신수단이 등장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혁명적인 진전이 일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지요.
E메일(전자우편)이나 위성방송TV 등이 등장한 덕분에 아무리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지구촌 곳곳의 정보를 얻어내는데는 별다른 불편이 없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완전한 정보 통제나 기밀 유지가 예전처럼 쉬울 수는
없게 됐지요.
때문에 저는 기술보호주의가 온전하게 존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 안교수 =어쨌든 한국도 어느 정도의 응용및 기초 연구능력을 배양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급 두뇌를 시급히 양성해야 한다는 얘기지요. 신기술을 창조하기 위한
한국 나름의 노력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 조바노빅교수 =물론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중요한 것이 교육시스템
이지요.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곳은 결국 학교 아닙니까. 효율적인
교육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선 교사들이 최근의 기술적 동향을 늘 파악할 수 있게끔
끊임없이 재교육해야 합니다.
미국 정부도 이같은 필요성을 인식해 각급 학교의 기술확산지향
교육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보조금을 주고 있습니다.
<> 안교수 =자체적인 기술개발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역시 대학의 역할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도 이런 점을 인식해서 교육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요.
대학의 교육 메커니즘을 어떤 방향으로 개혁해야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는
교육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을까요.
<> 조바노빅교수 =대학이 유능한 교수를 확보토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서둘러야 하는 게 교수들에 대한 과보호를 시정하는
작업입니다.
한번 교수로 임용되고 나면 평생이 보장되는 식으로는 상아탑내에
무사안일주의만 팽배시킬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혁신을 자극하거나 고급 두뇌를 양산하는 역할을
대학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요.
<> 안교수 =인간자본( human capital )이 기술진보의 중요한 토대라는
얘기가 되겠군요.
그런데 기술진보와 경제성장의 상관 관계를 분석하는 교수의 모형에서는
기술과 인간자본이 분리된채 취급되고 있더군요.
이들 두 요소는 분리할 수 있는 측면도 있겠지만 동시에 서로 혼합돼
있기도 하다고 봅니다.
기술과 인간자본이란 두 요소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술개발
전략의 결과가 상이하게 나타날 수도 있을텐데요.
<> 조바노빅교수 =기술진보라는 문제를 정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는
두 요소를 각각 떼어 접근하는 방식이 보다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이끌어내는 건 결국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기술진보에
작용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변수가 되는 시스템이 금융산업입니다.
사실 미국의 기술진보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토양은 잘 분권화돼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입니다.
예컨대 미국에선 각종 기술개발 동향에 대한 정보가 뉴욕 월 스트리트에
집중되고 있지요.
또 월가의 증권사들엔 광업에서 하이테크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기술적
특성과 동향을 줄줄이 꿰뚫고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 전문가는 확실한 신기술만 있다면 사업화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자본을 대줘 기술의 꽃을 피울 수 있게끔 지원하는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습니다.
금융산업의 발전정도와 기술의 진전단계는 서로 정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지요.
기초과학 기술에선 세계 정상급이었던 구소련과 동유럽국가들이 경제적
으로 궤멸되고 만 건 금융시스템이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현재 추진중인 금융 자율화와 개방화를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 안교수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은 월가의
금융인들이 어떻게 해서 자연과학이나 기술 분야에까지 깊은 소양을
갖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조바노빅교수 =미국 경영대학원들이 기술분야에 대한 개괄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를 통해 "기술적 아이디어는 대단한데 자본은 없는( great idea,no
money )" 사업가들을 어떻게 가려내 육성하느냐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업현장에서의 케이스 스터디를 교과과정에 집어넣어 "현장"과 이론을
잘 접목하고 있습니다.
<> 안교수 =지금 한국에서는 21세기 기술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거점기술을 국가차원에서 개발한다는 이른바 "G7(한)프로젝트"가
구상되고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의 기술선두 그룹으로 도약하려면 어느 부문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어 추진해야 하는 것일까요.
<> 조바노빅교수 =거듭 강조합니다만 역시 금융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은 지금 저축률에서는 거의 세계 정상수준에 올라서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저축자금을 기술개발로 연결시키는 장치는 역시 금융이지요.
또 정부와 민간연구소 대학 등의 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서로
보완되게끔 하는 노력도 펴나가야 할 겁니다.
한국에 있어서 무척 고무적인 점은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임금이
대폭 올라가면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고급 인재들이 속속 되돌아오는
역두뇌유입( reverse brain-drain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호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 안교수 =스탠퍼드대학의 폴 크루그먼교수는 얼마전 미국학술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한국 대만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들(NICS)이 이룩한
고도 경제성장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을 물량적으로 투입한 결과일 뿐
기술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주목할 만한 게 없었다"며 성장신화의
허구성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요컨대 성장의 엔진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서는 기술 축적과 교육
훈련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인 셈인데요.
<> 조바노빅교수 =한국으로선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기술적 효율성을 끊임없이 높여나가는
것 이외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지요.
<정리=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