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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은 세계 경제질서 격변기에 한국경제가 처한 좌표와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해외 석학과의 대담시리즈 두번째편으로 미국 UC샌디에고대
존 맥밀런교수와 중앙대 안충영교수의 대담을 싣는다.

중국을 비롯한 전환경제(Economies of Transition)에 대해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있는 맥밀런교수는 ''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시장경제 전환''을
주제로 진행된 이 대담에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시장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요즘의 과정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흐름"이라며 "전환의
방법론으로 급격한 개혁을 택한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있는 반면 점진적 개혁노선을 택한 중국이 성공적인 개혁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나 중국에서 성공한 점진주의가 반드시 북한에도 적합하다고
볼수는 없다"며 "한국은 통일이후의 상황에 대비해 대북경협을 착실히
진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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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충영교수 =사회주의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는 과정이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전환과 실험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가
전환경제의 전형이라 할수 있습니다.

<> 맥밀런교수 =중국의 경제성장은 매우 놀랄만 합니다. 지난 15년간
1인당 소득 증가율이 10%를 넘는 고성장을 지속했습니다. 아마 세계적인
기록일 것입니다.

이는 공산주의 몰락후 심각한 경기침체에 시달렸던 동유럽국가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중국이 성공한 이유를 들자면 무엇보다도 개혁초기에 새로운 기업의
등장을 허용하고 장려함에 따라 신흥기업이 성공할수 있었던 점을
꼽을수 있습니다.

이들은 생산과 고용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효율
증진에도 촉매역할을 했지요.

<> 안교수 =사회주의경제권에서 국가에 의해 이뤄지던 자원배분이
어느 순간부터 시장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입니다.

중국의 경우 인민공사가 해체되면서 농업생산성이 대폭 향상됐습니다.
지금은 국영기업 민영화조치등 개혁의 대상이 거의 전경제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는데요.

<> 맥밀런교수 =기업개혁은 중요합니다. 초기에 농업개혁에서 큰 성공을
거둔점이 중국의 전반적인 개혁을 성공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80년대초반부터 시작됐습니다. 중국은 기업개혁의 일환으로 다양한
유인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익을 모조리 중앙으로 이전하지 않고 일부를 내부에
유보토록 했는가 하면 경영자와 근로자들에게 보너스 형태의 성과급도
주었습니다.

또 생산에 관한 독자적인 의사결정권을 기업에 부여했지요. 이같은
일련의 개혁조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 안교수 =중국에서는 국영기업을 관리하는 경영자들이 급속히
교체되고 있는 반면 동유럽에서는 개혁이전의 관리자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중국정부는 어떤 기준으로 경영자를
선발한다고 보십니까.

<> 맥밀런교수 =중국 국영기업에 관한 데이터를 보면 능력위주로
경영자를 발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알수 있습니다.

89년의 경우 중국 최고경영자들의 평균재직기간이 5년반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경영자들의 재직기간보다도 짧습니다. 많은 교체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경제 효율을 높이는 동기로 작용했던것 같습니다.

즉 업계 평균보다 좋은 실적을 올린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높은지위로
승진한 반면 평균에 뒤처지는 실적을 기록한 최고경영자는 밀려났던
것이지요. 이점은 러시아와 큰 대조를 이룹니다.

말씀하신대로 러시아에서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면서 공산체제 때의
관리자를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유념해야할 점은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민영화 자체만으로 효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바꿔 말하면 개혁을 위해 반드시 민영화를 최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는 말할수 없습니다. 개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구조조정인
것입니다. 민영화는 수단일뿐 목표는 아니라는 얘기지요.

<> 안교수 =중국의 경우 각 지방의 향진기업들은 민간의 손에 많이
넘어갔으나 국영기업 민영화는 아직도 미흡합니다. 시장경제를 정착
시키기 위해선 민영화를 마냥 늦출수 만은 없을 텐데요.

<> 맥밀런교수 =확실히 중국은 국영기업 민영화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15년이면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제품이 모두 국영기업에서 생산되던
개혁이전에 비해 국영기업 생산비중이 50%선으로 떨어진 80년대에는
민영화가 비교적 쉬운 편이었습니다.

민영화가 왜 필요한지는 향진기업들의 사례로 설명될수 있습니다.
수천명에 달하는 마을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로 소유권이 넘어간
향진기업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안교수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을 통해 생산비절감 품질향상등 효율을
달성합니다. 사회주의경제권도 어떤 방식이든 경쟁요인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러나 시장진입을 자유화하는 과정에서 과잉중복투자가 발생할수도
있을텐데요.

<> 맥밀런교수 =상품과 투자가 부족한 전환경제에서는 과잉투자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먼저 시장에 진출한 기업은 높은
가격을 매겨 많은 이익을 남길수 있기때문이지요. 80년대초 중국에서도
시장을 먼저 차지한 기업이 많은 이익을 실현했습니다. 시장에 서둘러
진출해야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높은 가격입니다.

<> 안교수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려면 시장이 원활히 움직일수 있도록
규칙과 법제를 정비해야 합니다. 규칙과 법체제안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 공급이 조화를 이루는게 시장경제의 원리입니다.

사회주의경제도 시장 형성을 위해 제도와 법규를 서둘러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맥밀런교수 =맞습니다. 시장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기구입니다.
시장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려면 여러가지 제도가 정비돼야 합니다.

품질이나 브랜드명 상품보증등에 관한 정보도 잘 유통돼야 합니다. 이는
정부가 나설게 아니라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법규를 정비하는 것이지요.

이는 체제전환국에서 특히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법규나
거래보호장치가 미흡한 상태에서 거래할 경우엔 신용이나 명성만으로도
이를 대체할수 있어야 합니다.

<> 안교수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자율적인 자원배분
기능을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에서는 금융기관이 기업의 효율을 직.간접적으로 측정하고
성과에 따라 금융자원을 배분합니다. 그런데 사회주의경제에서는 금융이
전무했다고 할수 있지 않습니까.

<> 맥밀런교수 =전환경제에서 가장 어려운 개혁대상은 아마 금융일
겁니다. 중국 역시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려면 이 분야에 우선적으로 힘을
쏟아야 합니다.

중국에서는 아직도 국영은행이 금융을 지배하고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이것이 중국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향진기업들은 공공금융에 접근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저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지요.

전환과정에 있는 구소련권에서도 불가피하게 국영은행들이 금융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영은행을 경쟁하도록 만들면 한 은행을
독점할때보다는 상황이 좀 나아질수 있겠지요.

<> 안교수 =중국에서도 경제가 고도 성장하고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감에
따라 정치적 욕구가 커질 것으로 봅니다. 등소평 사후 정치 경제개혁
기조가 어떻게 달라질 것 같습니까.

<> 맥밀런교수 =중국 정치의 장래를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효율이 향상되면 궁극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한국과 대만이 대표적인 예지요.

하지만 이 견해는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기까지 꽤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현재로서는
경제개혁은 정치구조와 무관합니다.

등소평 사후에도 경제개혁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지속될 것입니다. 물론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매우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 안교수 =구동독지역에서는 새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통일이전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경제특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의 혜택을 적게 받은 지역
에서 불평 불만이 고조되고 있고 반개혁적 움직임도 상존하고 있습니다.

<> 맥밀런교수 =중국내의 반개혁적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빈곤지역이라도 예전보다 윤택해진 건 사실입니다. 빈곤지역이 인근지역
보다 현저히 뒤져 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동독출신 사람들의 불만은 통일 이전보다 못살기 때문이 아니라 서유럽의
이웃에 비해 상대적으로 못사는데 기인합니다. 중국에서도 언젠가는
상대적 불만이 문제될수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그런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 안교수 =흔히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아시아.태평양시대"라고
합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이 곧 일본을 따돌리고 미국을 추격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이같은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맥밀런교수 =중국이 금세기말까지 고성장을 지속해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중국의 교역규모는
비교적 작습니다. 국제적 영향력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군사력은 막강하고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유한
독재정권이 등장하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독재정권은 민주발전을
저해합니다. 중국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 안교수 =유인제도와 경쟁요인 도입,소유권 확립등 사회주의
경제권의 시장화 조치들이 중국에서는 점진적으로 이뤄진데 비해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급진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점진적인 방식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맥밀런교수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한 순간에 경제에서 차지하는
정부의 역할을 제거함으로써 시장을 형성할수는 없습니다. 시장경제에
맞도록 제도나 관습을 정비하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서두르다 보면 러시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뒤죽박죽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점진적인 접근방식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나라도 개혁하지 않고 남아있을 수는 없지요.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중국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는 남한이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중국에서 성공한 점진주의가
부분적으로 남북한 통일모형에는 맞지 않을수 있습니다.

북한은 언젠가 남한과 통일되고 나면 앞에서 많은 시일이 소요된다고
말한 금융시장등 시장경제에 필요한 것들을 일시에 돈 들이지 않고 얻게
됩니다.

<> 안교수 =중요한 지적입니다. 한국은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식 시장개방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하리라 생각합니다만.

<> 맥밀런교수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점진주의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입니다. 점진적으로 변하게 하려면 통제를 해야 합니다.

만약 통일후 남북한지역의 임금을 과도하게 통제한다면 북한지역에선
임금이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지역간의 인력자원 이동이 제한받게 됩니다. 또
임금을 통제하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들이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할것입니다.

통독후 동독지역은 임금을 서독 수준으로 올렸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동독인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서독지역으로 몰려가는 것을
차단했습니다.

순수히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동독지역 임금을 생산성보다 월등히 높게
올린 것은 바람직하진 않지요. 통일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임금
수준을 똑같이 해주든지, 통제를 가하든지 무슨 대책이 필요합니다.

< 정리=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