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조세연 연구조정부장>

금융소득 종합과세의 실시를 목전에 두고 대상 금융상품의 범위와
관련하여 논란이 분분하다.

당초 종합과세 방안에는 CD CP등 채권을 실물보유한후 만기전에
금융기관이나 저소득층에 매각하면 종합과세를 피해나갈수 있는
구멍이 마련되어 있었다.

즉 최종적으로 지급되는 이자소득만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었으므로
CD CP등 채권을 매입한후 실물로 보유하다가 만기 이전에 매각하면
직접적으로 세금을 부담하지 않도록 되어있었다.

이자소득이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채권을 금융기관에 팔때 원천징수세율 15%에 해당하는 세금만큼
유통수익률이 하락할 뿐이다.

CD CP등을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이번 정부발표는 이러한
방법을 봉쇄하는 것이다.

즉 금융기관이나 법인이 채권을 중도에 매입한 경우 그 기간동안 발생한
이자에 대해 15% 원천징수하고 원천징수내용을 국세청에 통보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채권의 중도매각에 의해 발생한 이자소득을 알수 있게 되고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해진다.

최근의 논란은 이러한 조치가 부동자금의 탈출구를 봉쇄함으로써
중산층의 세부담을 증대시키고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무지와 오해,그리고 이익집단의 제몫찾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실시해도 대다수 중산층의 세부담은 결코
늘어나지 않는다.

4,000만원 이상의 금융소득을 갖는 종합과세 대상인원은 약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000만명,사업소득자 300만명,
기타 금융소득만 있는 자의 수를 생각하면 10만명의 종합과세 대상자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0.5%의 고액 금융소득자가 우리나라 중상층은 아니다.

따라서 최근 판매되고 있는 절세형 금융상품도 0.5%의 종합과세 대상자
이외의 대다수 중산층에게는 효과가 없다.

또한 종합과세의 대상자 모두가 현행 제도보다 세부담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금융소득과 종합소득의 크기에 따라 세부담의 변화를 계산해보면
금융소득이 6,600만원이하인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현행 제도보다
세부담이 증가하지 않는다.

다른 소득의 크기에 관계없이 세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연간 금융소득이
1억92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다.

이것은 이자율을 13%로 가정할때 금융자산 보유액이 8억4,000만원을
넘는 경우로서 우리사회의 극히 일부다.

이들 최상위 금융소득자에 대해 소득세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은
응능부담의 원칙에 합당한 것이며 소득세 기능의 강화와 수직적
공평성의 확보라는 종합과세의 목적 그 자체다.

종합과세가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하고 국민저축을 감소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이익집단의 제몫찾기 경쟁에 의해 과장된 것이다.

종합과세에 따라 자금이동이 발생하더라도 부동산실명제등을 강화한다면
이탈된 자금의 대부분은 금융시장내에서 다른 금융상품으로 환류될 것이다.

93년8월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었을 때도 금융시장이 단시일내에 정상상태를
되찾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의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면 CD CP등의 실물보유를
통해 중도매각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에 대해서는 30%의 세율로
차등분리과세하는 대안을 고려할수 있을 것이다.

현재 고액 금융소득자는 세부담의 증대보다 소득자료의 국세청통보를
더욱 두려워하는 것이므로 국세청에 소득자료를 통보하지 않는 대신
고율의 세율로 원천징수하자는 것이다.

이경우 CD CP등의 유통시장위축도 방지할수 있고,중간매입 기간의
산정등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할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종합과세방안의 문제는 세금우대저축을 폐지하고 기준금액
4,000만원 미만의 진짜 중산층에 대한 환급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저소득 근로자의 금융소득에 대한 세부담이 증가할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소득세 면세자가 금융소득에 대해서는 15%의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수평적 공평성의 원리에 위배된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여론과 이익집단의 압력사이에서 원칙없이 며칠만에
오락가락한것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종합과세를 회피할수 있는 금융자산을 늘려 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99.5%의 국민에게는 설득력이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