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아가 가져온 보옥의 통령보옥을 베개 밑에 넣어둔 뒤에야 희봉은
비소로 안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희봉에게는 보옥의 그 구슬이 마치 영국부의 영화에 권세를 지켜주는
부적처럼 여겨졌다.

진가경이 녕국부와 영국부의 몰락을 에언하고부터 희봉은 보옥의
구슬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보옥이 일어나보니 목걸이가 없었다.

목걸이의 다른 장식들이야 아까울 것이 없지만 통령보옥이 없어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사실 통령보옥이 늘 부담이 되어 이걸 안차고 있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을 해오던 보옥이긴 하지만, 아버지 가정을 비롯하여 집안
어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라 그걸 잃어버리는 날엔 온 집안,
아니 가문 전체가 난리가 날 판이었다.

무섭게 꾸짖으며 매를 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자 보옥은 안절부절
못하였다.

"아니, 왜 그래? 무얼 잃어버렸어?"

진종이 부스스 일어나며 보옥의 얼굴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목걸이랑 구슬이 없어졌어. 진종이 너, 내가 어제 잘때 목걸이 차고
있는 거 봤어 안 봤어?"

"난 잘 모르겠어. 신경인 안 썼으니가"

진종이 멀뚱멀뚱 눈말 굴렸다. 보옥은 이제 주방에서 지능과 한바탕
어우러질때 흘렸나 싶어 주방으로 달려가 보았으나 거기에도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서 나오는 보옥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희봉이 보옥이 왜
저리 허둥대는가를 알고 넌지시 미소를 지으며 보옥을 불렀다.

"구슬은 여기 있어요. 누가 훔쳐가는 꿈을 꾸어서 내가 하룻밤
보관하고 있었어요."

평아는 희봉 옆에서 간밤 일을 생각하고 얼구이 벌개져서 서 있었어.

보옥은 평아가 왜 저리 얼굴이 벌개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난 또, 구슬을 잃어버린 줄 알고 어른에게 혼이 날 생각만 하고
있었네"

보옥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희봉으로부터 목걸이와 통령보옥을
돌려받았다.

"어른들에게 혼이 나는 곳이 문제가 아니라..."

한 가문의 흥망성쇠가 달린 문제라고 말을 할 참이었으나 희봉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문제가 아니라 뭐예요?"

보옥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희봉의 다음 말을 캐물었다.

"아, 구슬을 항상 잘 보관하시라구요. 하늘이 내려준 구슬이니까.
어젯밤처럼 누가 가져가는데도 잠만 자지 말고"

"그럼 밤마다 형수님에게 맡겨놓고 자야 되겠네"

보옥이 농담을 하며 피식 웃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