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모임 한두개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우연찮게 의기가
투합돼 모임을 결성하는 경우도 있다.

까까머리 시절 만났던 친구들 모임으로 ''돌담회''가 그것이다.

''돌담회''는 결성된지 어느덧 약관의 나이를 넘겼다.

올해로 스물한해를 맞았다.

고향이 경북김천 갑문이지만 어릴적 인천으로 유학간 죽마고우인 최석만
과 필자는 그당시 매일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서신교환으로 달래곤 했다.

방학때 고향에 내려온 유학갔던 그 친구와 인천의 짠물(?) 3명과의
만남은 ''인생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무색케할
정도였다.

방학때면 서로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우리가 지금가지 진한 정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때의 추억때문
이다.

철없던 고등학교시절에 만나 우정이 무엇인지, 서로의 아픔이 무엇인지도
분간하지 못하면서 막연히 보고싶다는 한가지 사실로만 연결돼온 ''짠물''들과
의 만남은 각자의 분야에서 훌륭히 성장하게끔 밑거름 역할을 했다.

아무런 제약없이 시작된 우리의 ''얼굴보기''는 각자의 삶에 얽매이면서
정기적인 모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난 74년2월 우리는 친목모임을 결정했다.

매일 보고싶은 심정을 뒤로한채 돌담을 차곡차곡 쌍아가고 있는 서울의
신대양주물 대표 최익순, 대전에 있는 중앙종묘 장명재, 충남 합덕과 고향
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신현엽과 최석만, 그리고 필자등이 회원이다.

지금도 어김없이 1년에 두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돌담회는 하나하나 쌓아올린 돌담처럼 단단하고 견고한 우정으로 현재
각자 살고있는 서울과 대전 경북 충남등을 순회하면서 모임을 갖고 있으며
연말에는 회원들의 집에서 부부동반으로 모인다.

지난 92년 10월에 각자부인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이제는 서로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지만 각자 자기분야에 대한 의견도
나누고 친목도모와 함께 정보교환도 함으로써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고있다.

우리 5인방은 1년에 두번정도는 꼭 모임을 갖는다.

앞으로 우리의 제2세까지도 함께 만날수 있는 방법을 찾는등 영원한
돌담회로써 각자가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