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미국과 이웃해 있으면서도 미술분야에서는 미국과의 차별화가
뚜렷하다.

멕시코만의 개성과 특성을 살린 작품들이 미국인들의 시선을 끌고 그 가치
를 인정하게 만든다.

1940~50년대에 멕시코미술인들은 미국미술에 반기를 들고 자기들만의 주장
을 밀고 나갔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뒤 미국인들은 멕시코미술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멕시코의 작가와 작품을 미국에 초대했다.

요즈음 국내 매스컴의 미술관련 보도중에는 백남준씨에 관한 내용이 상당히
많다.

수년전 백남준씨는 국내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세계적 작가가
아니었을때 우리 매스컴이 자신을 냉대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어느 평론가의 글처럼 백남준씨의 작품은 사실 세계적이지만 그간의 그의
발자취는 한국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화단에서는 그와 그의 작품을 한국적인 것처럼
인정하고 해석하려 한다.

백남준씨의 이른바 출세분기점은 휘트니미술관초대전이다.

휘트니 비엔날레가 그렇듯 휘트니미술관은 미국국적이 아닌 사람에게
초대전을 열어 주지 않는다.

설치미술의 대가 크리스토도 자신이 태어난 모국의 국적이 아닌 미국 국적
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뚱뚱한 인물상으로 유명한 보테로라는 콜롬비아작가는 미국국적이
아니면서도 파리와 뉴욕에서 성공한 작가이다.

그렇지만 보테로도 뉴욕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파리의 샹젤리제광장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거리조각전을 갖고서야 뉴욕에 재입성했다.

우리는 어느 분야건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아야 인정하려 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제아무리 유명해도 미국국적을 지니고 미국의 문화를
반영하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철저한 문화자국주의를 추구하는
미국사회의 바탕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