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주권주의 포기냐, 아니면 무역전쟁으로 치닫느냐"

미국측과 20일 밤 11시30분부터 워싱턴에서 이틀째 자동차협상을 벌인
한국측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미국의 강경한 개방압력을 수용할 경우 자동차세나 관세인하가 불가피해
조세주권주의포기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돼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슈퍼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관행
(PFCP)으로 지정되는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제소를 불러올게 뻔해 양국간
무역전쟁으로 비화될 공산이 크다.

한영수통산부통상무역3심의관을 수석대표로 한 한국대표단은 20일 새벽
2시30분(워싱턴현지시간 19일 오후1시30분)부터 5시간 가까운 1차협의를
벌였으나 첫대면인 만큼 상견례와 더불어 양측의 기본적인 입장개진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소식통들은 1,2차협의에서 미국측은 그간 제기됐던 <>관세(8%)인하
<>배기량별로 차등과세하는 자동차세등 내국세의 개선 <>자동차할부금융사의
외국인지분제한(49%)철폐 <>형식승인면제 <>소비자인식개선및 광고제한철폐
등을 폭넓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시장의 외제차점유율을 5%까지로 높이라는 식의 시장개방수치
목표제시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의 관세인하요구에 대해 한국측은 유럽의 자동차수입관세가 10%,
캐나다가 9.2%인 점을 들어 현행 관세율 8%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버틴
것으로 전해졌다.

배기량에 따라 차등과세되고 있는 자동차세는 교통 환경 에너지절약등
국내사정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미국차에 대해서만 차별대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보유과세를 낮추고 주행세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에
따라 자동차세의 개선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이번협상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이들 세금의 체계개선및 세율인하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예상보다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일 대한시장개방압력의 포문을 열고 있는 미키 캔터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0일에도 "한국의 시장개방을 더이상 기다리기 어렵다"고 위협했다.

특히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거칠어지고 있는 미자동차업계의 개방공세
를 행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의 칼날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들 세금체계의 개선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조세주권주의의
침해나 포기라는 비난에 직면하게돼 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결국 형식승인면제대상확대나 소비자인식개선노력등을 약속하고 할부
금융사의 외국인지분제한철폐(현재 97년계획)를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선에서 미국을 달래는 전략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미국이 이 정도선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통상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자동차문제에
대해서도 설비증설을 통한 생산확대에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이번 한미자동차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은 오는 27일 슈퍼 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관행으로 지정하고 WTO에 제소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측은 WTO에 제소될 경우 대응논리가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양국간 무역전쟁의 촉발이라는 점에서 여간 부담스런 것이 아니다.

더구나 WTO에 갈경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유럽 일본까지 가세, 한국의
입지는 좁아질수밖에 없다.

이같은 부담때문에 양측은 정치적 성격이 강한 모종의 절충을 시도, 이번
협상을 모양좋게 끝낼 가능성 또한 배제할수 없다는 것이 주변의 관측이다.

< 고광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