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수해가 이만저만 큰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데 남한의 구호 논의는 언제 결말날지 모를 지경으로 시비에 끝이
없다.

재해구호란 시간을 놓치면 효용이 줄어드는 법인데 이러다간 줄것 주고도
안팎으로 욕을 먹을 형세다.

그 근본 원인이 아픈데는 감추고 보자는 북측의 습관성 더듬수에
있음은 물론이다.

7월말~8월초 사이 하루 500 의 집중호우등 1년 강우량 이상의 대폭우가
특히 황해.평안 지방에 있었음에도 유엔 조사에서 밝혀지기 전 평양에선
그런 사실조차 발표가 없었다.

기상이변 자체를 쉬쉬하니 그 피해상황이야 말할 나위 없다.

인명의 사망 실종이 남한 53명인데 북에선 임진강 하류로 떠내려온
시신만 9구인데도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간접 보도가 나왔었다.

뒤늦게 유엔 조사단을 불러들여 총피해가 150억달러라느니,교량유실이
어떻다느니 야단을 폈다.

그래도 인명 피해만은 언급을 피하다가 엊그제야 5,000명사망 운운 흘려
보내고 있다.

국가원수 공석을 1년여 끄는 판에 이쯤이 새삼스러울건 없다 해도 그런
집단을 상대로 대화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특히 동족인 남측으로서는
국민이나 정부나 곤혹스럽긴 매 한가지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남쪽에서 하는 일은 어른스러운가.

그게 아니니 답답하다.

한마디로 쌀원조 수해원조등 근래 범정치권의 대북정책 태도는 마치
나귀를 몰고 가는 부자의 우화를 연상할 만큼 갈팡질팡이다.

줄거리를 보자.북한의 공식요청이 없는 한 5만달러 상당의 적십자
구호외엔 못하겠다는 것이 정부 여당의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200만달러까지는 높일 용의가 있다는 나부총리의 수정발언이
나왔다.

그후 여당은 반대,일부 야권은 찬성하는 상태가 며칠째다.

쌀 원조때와 견주자.제발 받으라고 사정한 1차 15만t이 값어치로는
3억달러 가깝다.

거기다 얼마든지 실어 보내겠다던 외국 쌀을 금액으로 치면 또 최소
수억달러 추가다.

요새 논의되는 5만달러를 그에 비하면 몇천분의1이고 200만달러라야
100분의1도 안된다.

왜 이리도 터무니 없이 오락가락인가.

한마디로 과민반응이다.

6.27직전 대북 쌀 원조를 무제한하겠다는 느닷없는 정부발표에 국민이
반발하자 지방선거 패배가 겹친 후의 여권의 충격은 컸다.

그 충격이 하필 수재구호에 엉뚱하게 과잉작용한 것이다.

충남등 국내 수해의 복구와 구호가 시급함도 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북한의 엄청난 재해를 단 5만달러,4,000만원 상당의
적십자 구호로 때우자고 할 정도로 몰지각하진 않다.

쌀 원조의 경우를 참고삼아 모든 합의과정을 거쳐 정부가 대북 수재구호의
타당성을 설명한다면 200만달러 아니라 그 10배인들 망발이 아닐 것이다.

여론을 존중하는 기본자세는 백번 옳다.

다만 여론 포착은 냉정하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나귀를 부자 모두가 타다가 개천에 빠지지 말고 누가 탈 차례인지
분간할 줏대를 가져야 부답다.

북의 귀머거리만큼 남의 과민도 문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