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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한담] '좋은 예술작품은 자연스러워야' .. 최종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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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고 강한 것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서가것은 거의 무조건 추종된다.
    미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미술이라는 이름 아래 일반이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실험및 해체미술이 유행하고 있다.

    30여년동안 인물상만을 고집, 국내는 물론 구미화단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조각가 최종태교수(63.서울대미대)를 만나 시류에 관계없이 독자적인 세계
    를 추구할수 있었던 힘을 알아봤다.

    인물, 그중에서도 여인상을 통해 좋은사람 나아가 반가사유상을 닮은
    온화하고 사려깊은 한국인의 참모습을 만들고자 해온 최교수는 모든
    사물의 진짜 힘은 크고 강한 것이 아닌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것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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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그리시는군요. 조각과 마찬가지로 그림의 소재도 얼굴이 많았는데
    언제부터 바다를 택하셨는지요.

    <> 최교수 =실은 70년대중반부터 조금씩 그렸어요. 학생들과 수학여행을
    갈때마다 스케치를 하다가 최근 들어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지요.

    -산은 안그리시나요.

    <> 최교수 =산은 밑에서 보는 것보다 위에서 보는게 좋고, 그러자면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힘이 들어서.구름과 안개에 가린 산을 보고 싶어 "가야지
    가야지" 하고 있으니까 멀잖아 가게 되겠지요. 가면 그리게 될거고.

    -재료로 파스텔만을 사용하시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 최교수 =아이들이 어릴때 함께 파스텔화를 그리며 놀아주던 것이
    계기가 됐는데 무엇보다 부드러워 좋아요. 부드러움이란 내 작품의
    본질이나 다름없는데 파스텔은 일단 그걸 충족시켜줘요.

    유화나 수채화물감이 오래 되면 변색될 가능성이 있지만 파스텔은 색이
    달라지지도 않아요.

    -그림이 전보다 커졌는데요.

    <> 최교수 =손가락으로 문질렀었는데 손바닥으로 하게 됐으니 그만큼
    커진 셈이지요. 조각이건 그림이건 혼자서 편안한 상태로 할 수 있는
    크기로만 하다 보니 소품 위주가 됐었는데 요즘엔 왠지 큰것도 하고 싶어요.
    주위에서도 크게 좀 만들어보라고들 하고. 조각도 2m이상짜리를 해볼
    작정이에요.

    -그림과 조각중 본령은 그래도 조각이겠죠.

    <> 최교수 =조각을 더 오래 했으니까. 실은 두가지 모두 좋지만. 자코메티
    도 조각가로 더 유명하지만 그림도 잘 그렸어요. 좋은 그림도 많고.

    -국내 미술계가 온통 추상바람속에 휩싸여 있을때도 구상조각, 특히
    인물조각만을 고집한 걸로 유명한데요.

    <> 최교수 =오랫동안 나자신과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요. 6.25이후
    서구미술의 각종 경향이 한꺼번에 알려지면서 모두들 추상미술의 물결
    속으로 뛰어들었어요.

    나는 과연 어찌할 것인가,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사로는 밥먹기도
    어려운 현실을 보면서 추상미술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어요. 우리의 자연과 민족의 문제를 형태로 표현하고 싶었지요.

    그런속에서 인체를 고집한 건 인체야말로 한국사람과 한국사람의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낼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60년대이후에도 제재를 안바꾸셨죠.

    <> 최교수 =고민끝에 65년께 결단을 내렸지요. 나는 한국사람이다, 민족적
    자존심을 가져야겠다고. 그뒤로 비서구권의 예술에 대해 탐색하기
    시작했어요.

    서아시아에서 극동지역,아프리카와 남미의 문화까지 샅샅이 뒤졌지요.
    머리속에 현대적인 것과 고대의 것이 뒤섞이고 갈등은 계속되고.무엇을
    만들까 어떻게 만들까,이 물음은 오늘까지도 내 마음속에서 계속되고
    있어요.

    무엇을 만들까라는 절대절명의 명제에 인체로 답해온 것은 인체라는
    형태를 통해 인간의 문제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코메티의 작품을 만난건 일종의 구원이었죠.친구들은 모두 모던한걸
    하고 있는데 나만 홀로 외딴 곳에서 사람만 만들고 있는데 대해 회의하던
    중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곤 나도 친구가 있다. 외롭지 않다 싶었으니까요.

    -인체중에서도 여인상만을 만드셨는데.

    <> 최교수 =여인상,그중에서도 소녀상만 만들었죠. 여자만 만든 것은
    좋은 것은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은 부드러운 만큼 작품도 부드러워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인위적인 것은 결코 부드럽지 않아요.

    정말 좋은 작품이란 어느 한곳에도 지나친 힘이 들어있지 않은,자연스러움
    그 자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녀상에 매달린 것은 맑고 깨끗한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고.봄풀 또는
    비갠 여름하늘처럼 맑고 밝고 깨끗한 상태를 만들어내고 싶은 것이지요.

    -한때는 입상만 내놓았고 근래에는 좌상 위주로 발표하고 계신데요.

    <> 최교수 =좌상에는 공간이 있어요. 구부리다 보면 몸통과 팔 사이,
    혹은 가슴과 다리사이 등에 빈 공간이 생기지요. 그게 재미 있어서
    좌상을 만들었는데 요사이엔 좀 시들해요.

    다시 입상으로 가야지,아니면 누운걸 만들든가. 언젠가 누군가가 왜
    입상만 하느냐고 하길래 "나이 들어 서있는게 힘들면 앉아있는 것도
    하겠지"라고 대답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까 앞으로는 누운걸 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조예가 깊으시죠. 시인 박용래선생과는
    상당히 가깝게 지낸 걸로 소문나 있는데요.

    <> 최교수 =지금도 다른 부탁은 웬만큼 거절할 수 있는데 원고청탁은
    마다하지 못해요.

    박용래 시인은 나보다 일곱살이나 위이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로
    30년을 흉허물 없이 지냈지요.

    80년 늦은 가을 그가 홀연히 간뒤 친구들이 모여 시비를 만들때 내가
    고른 시가 "저녁눈"이에요.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밑에 분비다"로 시작해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분비다"로 끝나는 시인데
    얼마나 좋은지. 요즘도 조각을 하다 눈에 덜 미치는 곳이나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을 손질할때면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을 되뇌게 돼요.

    구석구석을 손보면서 말집 호롱불과 변두리 빈터를 생각하고.

    -가톨릭미술가회 회장으로 교회미술운동에도 참여하시는데.

    <> 최교수 =93년엔가 한국인의 심성이 담긴 성상미술을 연구하러 왔다며
    자료가 될만한 것을 알려달라는 독일인의 부탁을 받고 당황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때 서양식 집을 지어놓고,서양식의 성상을 만들어 안치해놓고,서양식
    성물을 들고 생활하는 우리의 현실을 반성해보자는 깨우침이 있었어요.

    -성당건축에 쓰이는 스테인드글라스에도 관심이 많으시죠.지난해에는
    유리화전도 가지셨는데.

    <> 최교수 =오스트리아의 유리장인 루카스와 우연히 만나 오랫동안
    교유하게 된것이 본격적인 유리화를 만들게된 계기가 됐어요.

    80년 광주사태후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 로마에 갔다가 파리에 들렀는데
    언젠가 만난 적이 있는 루카스가 먼길을 달려왔어요.

    그림을 알고 좋아하는 동갑내기 유리장인을 만나 결국 유리화를 만들게
    됐죠. 빛은 모양이 없지만 색유리를 통하면 형상이 돼요.

    -40년이상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작가로서 터득한
    예술론이 있다면.

    <> 최교수 =중국작가 제백석이 90세이후에 그린 그림을 보면 그린 것이
    아니라 종이위에 저절로 스며나온 것같아요. 미국화가 로즈코가 죽기전
    그린 것을 봐도 그렇게 부담없이 시원할 수가 없어요.

    어찌보면 하루이틀 그리다 만것같기도 하고 덜 그린 것같기도 한데 보면
    볼수록 꼭지가 떨어진 감처럼 완숙의 경지가 느껴져요.

    지금까지 해오면서 한가지 터득한 것이 있다면 지나친 집착은 못쓴다는
    거예요. 적당한 선에서 손을 털어야 해요.

    -지향하는 것이 있다면.

    <> 최교수 =얼마전 케이블TV 불교방송에서 선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요소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봤어요.

    불균제(비완전)탈속 자연(비인위) 단순정적(침묵)고고(엄격.강인)유현
    (후한정취)의 7가지였는데 조각이나 그림도 바로 저런 상태를 추구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음악은 어느것이나 다 좋지만 특별히 모차르트의 것을 좋아해요.

    베토벤은 누워서 듣기엔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엄숙하지만 모차르트
    는 그렇지 않죠. 경쾌하고 아름답고 변화무쌍하고 유창하고. 또 부드럽고
    사랑스럽고 신비하고, 편안해요. 내 조각이나 그림도 모차르트의
    음악같기를 바라지요.

    위대한 예술가는 하늘이 낸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어요. 사람은 다만
    노력할 따름이지요.

    (최교수는 충남 대덕 태생으로 대전사범학교를 나와 국교교사를 하던중
    53년 "문화세계"지에 실린 김종영씨의 조각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망"을
    보고 자극을 받아 이듬해 서울대미대조소과에 입학했다.

    국전 문교부장관상과 추천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이화여대교수를 거쳐
    70년부터 서울대교수로 재직해왔다.

    수필집 "예술가와 역사의식""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등을 펴냈고 75년부터 프랑스와 미국 일본 스위스 그리스등에서
    개인전을 개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대담=박성희 문화부장]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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