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살이지""열살이에요""그럼 "소띠"구나""아니에요. 전 "빨간띠"예요"

손으로 태권도 흉내를 내며 스스럼없이 대꾸하는 어린 아이를 보며
할아버지는 어이가 없어진다.

이런 경우는 세대의 격차에서 오는 의사소통의 장애라고 치자. 그러나
어떤 평론가가 써놓은 다음과 같은 글에는 아연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적인 것은 운동진영이 민중들의 실천과제를 어떤 부분에서 일정
정도로 담보해냈는가 분석되어지는 일이다"

서구문장의 설익은 모방이 만들어낸 문장이지만 몇번을 읽어도 글쓴
이의 진의를 파악하기 힘든 글이다.

어디 그뿐인가.

"차별화된 아이디어로 독특한 이미지와 노하우를 구축해 참신한
크리에이티브를 재창출."운운 하는 광고문을 대하면 이것이 정말
한국인을 위한 광고인지 아리송해진다.

국어는 요즘 "말하기" "듣기" "쓰기"에서 역사상 가장 큰 수난의 시대를
맞고 있다.

말과 글의 해석이 듣는 이나 읽는 이의 선의의 상식에 맡겨질수밖에
없어졌다면 국어가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또 학자들의 분석처럼 국어의 조어력이 날이 갈수록 손상되어 그로
말미암아 외래어의 차용이 날로 걷잡을수 없어지는 것이라면 국어는
퇴행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550년에 불과한 우리 문자생활의 역사는 2,000~3,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인도.유럽권의 문자에 비하면 너무 짧다.

언어에 걸맞는 제대로된 문자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반세기에 불과하다.

국어를 아끼고 가꿔도 모자랄 형편인데 그것을 홀대하고 팽개쳐버린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국어를 빼앗겼던 경험을 갖고 있는 우리가 벌써 그 쓰라림을 잊은것
같아 안타깝다.

교육부는 세계화시책의 일환으로 영어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각급학교의
국어교육체계를 축소할 방침을 확정하고 먼저 국교 5,6학년용 국어교과서의
분량을 크게 줄여 교육단체들의 심한 반발을 사고 있다.

외국어 구사능력은 모국어 구사능력이 기본이라는 상식조차 무시한
성급한 처사다.

"여러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다중언어구사자,두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이중언어구사자,한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미국인이라고 한다"는 미국의 신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암시하듯 "세계성"은 곧 "영어성"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
정책입안자들의 병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