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전자업체들이 생산부문을 축소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에 주력하면서
하청업체들의 "얼굴없는 전자제품"이 세계 전자시장에서 새 주역으로 부상
하고 있다.

컴퓨터, 가전업체등 대형 전자업체들로부터 전자 부품이나 완제품 생산을
하청받아 공급하는 이 산업은 소위 "전자제품생산서비스(EMS)"라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며 매년 2배이상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EMS시장에 불을 당긴 것은 지난 80년대 가전업계에 도입된 "아웃소싱"전략.

생산의 일부가 회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이 전략이 널리 퍼지면서 ESM시장은
본격 성장을 시작했다.

미증권회사 로드만&렌셔는 오는 97년에는 EMS전자제품이 미국의 총전자
제품 출하량중 11%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머지않아 EMS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30~4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EMS최대 선두주자는 미국의 SCI시스템.

이회사는 이미 전세계 20여곳에 공장을 갖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매출만도 연간 26억7천만달러(94년 8월-95년7월), 순익 4천5백20만달러에
달하는 명실상부한 "다국적기업"이다.

내로라는 컴퓨터업체들의 "폐기"사업으로 SCI가 성공한 비결을 무엇일까.

"더 싸고 덜 관료적이고 무엇보다도 시장의 부침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올린 킹 회장의 답변이다.

SCI시스템에 이은 2위의 EMS업체는 미솔레트론.

말레이시아 페낭에 5천3백여평(1만7천6백40평방m)규모의 공장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코틀랜드등에서도 현지생산체제를 구축해 놓고 있다.

싱가포르의 플랙스트로닉스인터내셔널과 홍콩 남타이전자는 "국제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아시아 기업.

플랙스트로닉스는 싱가포르등록법인이지만 주식은 미국 장외시장인 나스닥
(NASDAQ)에 등록돼 있으며 이 회사 회장(마이클막스)은 하버드대 MBA출신
이다.

실제 제품생산은 미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홍콩 남타이도 마찬가지.중국 상해태생인 회장(MK쿠)이 캐나다에 본사를
두고 중국 경제특구인 심천에서 물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 양사는 특히 "중국은 차세대 전자산업의 핵심거점"이라는 판단아래
중국생산체제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웃소싱은 이제 뒤집기 어려운 대세로 자리잡았다.

효율성을 고려할때 제품 디자인과 마케팅은 대기업, 부품생산과 조립등은
하청업체로 분업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수직통합"이란 이제 죽은전략(로드만&렌셔의 분석가 스티븐 오사드)이
된 셈이다.

컴퓨터및 각종 전자제품의 필수부품인 인쇄회로기판의 경우 지난해 전세계
시장규모는 2백11억달러.

이중 전자업체들이 직접생산한 비율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하급기술의 일부 부품생산에 국한됐던 EMS의 사업영역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제품의 생산을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책임지는 "턴키"방식의
수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주요전자업체들이 하청계약선을 다른 업체로 바꿔 버리면 EMS업체들은
큰 손실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아웃소싱흐름이 계속되는 한 일거리가 없어 고민할 우려는 없다.

현재 모든 전자업체들은 원가절감에 혈안이 돼 있고 생산원가를 줄여주는
EMS를 외면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