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의 생태 또한 다른 동물들의 그것처럼 흥미로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물에서만 살아야 하는데도 살론지방에 서식하는 아나번스 스잔데스라는
물고기는 뭍으로 나와 일주일을 산다.

또 남미의 피라냐는 길이가 6인치밖에 안되는데도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 먹는다.

이러한 물고기의 생태를 연구하려면 강과 바다를 직접 찾아 다니면서
조사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와같은 업적을 최초로 남겨 놓은 사람은 조선조 영조~순조
연간의 학자이자 천주교 전도가인 정약전이다.

1901년 신유박해때 흑산도로 유배를 당했을때 근해수산물 155종의 생태를
조사하여 "자산어보"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그뒤로 간행된 한국의 어류학관계 고문헌만도 35책에 이르른다.

서가의 구석에 뭍혀있던 이들 고문헌을 끌어내 햇빛을 보게 한 장본인은
평생을 물고기연구에 투신한 한국어류학의 개척사로서 지난27일 97세로
작고한 도산유 정문기박사다.

"한반도 강산에 흐르는 물"이라는 그의 아호처럼 강과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더불어 살았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행어의 정체를 밝히고자 제국도로 건너가
어른들을 돌아 다니면서 약장수처럼 "행어"라는 물고기를 아느냐고 외치고
다니던 어느날 그것이 "멸치"라고 일러주는 60세가량을 만나 가숨 벅참던
일이 있었죠"

그의 물고기연구는 수지학적 접근과 더불어 현장조사에 더욱 많은 열정과
시간을 쏟았다.

압록강일대를 세번이나 오르내리면서 조사를 한 적을 비롯 전국의 물길이
있는 곳에는 그의 발길이 닫치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조선의 해태" "압록강어보" "한국어보" "어류박물지" "한국동식물
도감.어류"등 저서를 잇달아 내놓은데 이어 그것들을 1977년에 "한국어
도보"로 집대성해 놓았다.

그가 평생동안 조사한 어종들에다 외국인학자 14명이 조사한 것들을 합친
한국물고기 872종의 분류학적 위치와 형태 생장 분포 방언등을 망라한
것이다.

중앙고보 교장인 인촌 김성수와 일본 송산고교 독일어교사등의 영향을
받아 동경제대에서 수산학을 전공한 그는 일제치하에서 총독부 양식계장을
비롯 수산시험장장등을 지내 친일의 족적을 남기기도 했으나 광복후
미군정청농수부 수산고문및 수산국장 부산중앙수산시험장장 부산수산대
학장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수산자원개발에 크게 이바지했음을 부인할수는
없다.

더욱기 황무지였던 한국어류학을 체계화시킨 그의 공로는 지대한 것이
아닐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