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을 중요한 정책목표의 하나로 삼고 있는 정부의 아킬레스건은
공공요금정책이다.

국민소비생활 안정에 민간기업의 재화.서비스가격 인상억제가 필수
요건일진대 정부 스스로 운영하는 공공료금의 인상이 예외로 허용된다면
이는 한마디로 자기모순이다.

지금 국회에 회부돼 있는 새해 예산안에 반영된 정부의 공공요금
조정계획엔 철도 우편료 고속도통행료 담배값 중.고교와 국.공립대의
납임금에다 광역상수도 원수요금에서부터 항만시설 사용료 박물관과
국립공원 입장료 부동산등기 수수료에 이르기까지 10여 품목에 걸쳐
5~10%선의 인상이 계상되어 있다.

물론 이 계획은 확정적으로 어느 날짜에 단행하는 실행계획과는 다른
성질이다.

말 그대로 정부가 다음해 예산을 짜는데 전제가 되는 각 특별회계
세입추계의 추정치이다.

따라서 개별 요금의 실제 조정은 적절한 시기에 적정률을 주무부서와
물가당국이 협의해 단행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예산편성 과정에서 이미 각 관련 부처간의 합의조정을 거쳤을뿐
아니라 예산편성과 물가관리 업무가 모두 재정경제원장관 동일인의 소관
이니만큼 필요시의 부처간 협의에는 아무런 견제.제어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어있다.

근년 어렵게나마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간6% 미만으로 억제해왔고
그 과정에서 두드러진 희생은 공무원의 보수였다.

일반물가에 대해서도 당국이 권한외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비록 인상요인이
있더라도 시기와 인상률을 낮추는 무리한 방법을 이면에서 동원해 왔다.

과거 어느 정권아래서나 두루 사용되어온 전가의 보도를 새정부라고
해서 용도폐기할 묘안이 있을리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원가구조상 명백히 인상요인이 내재한 재화.용역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역제하는 무리를 언제까지 지속할수는 없다는 점이다.

문제를 순리로 풀어야할 정권적 특성도 그러려니와 무엇보다도 무국경
개방경쟁 시대에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격정책의 자율화를
선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가격자율화가 바로 가격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품질등 비가격경쟁력과 함께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경영전략은
전적으로 기업자체에 귀속함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기업경영 원리가 정부관장하의 공기업 경영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마땅함을 강조코자 하는 것이다.

진부한 논리로 들릴지 모르나 공기업의 경영합리화를 통한 원가압력
해소는 대단히 시급한 과제이다.

더욱이 공사화를 거쳐 일부 민영화까지를 지향하던 철도사업이 돌연
국영체제 유지로 방향전환되는등 경제정책 기본노선의 일관성 결여가
엿보이는 와중에 정부가 여러 공공요금의 일제 인상을 총선이 있는
내년중에 시행키로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중시하지 않을수 없다.

그렇잖아도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팽창예산이란 지적을 벗기 어려운데
가격파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저가격 기류에 정부가 정면으로 맞섬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