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동차협상 과정에서 우리측 협상안이 사전유출돼 정부의 대외교섭태세
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자동차협상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시한 최종안이 미국에
미리 흘러들어감에 따라 결국 미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 앞서 3가지 안을 준비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3가지안이란 배기량별 자동차세에 관한 것으로 2천5백cc~3천cc 4백10원,
3천cc초과 6백30원으로 돼있는 현행 자동차세를 각각 13백50원 4백50원
23백30원 4백10원 33백10원 3백70원으로 낮춘다는 내용이다.

우리측 대표단은 미국의 압력에 따라 이같은 협상안을 단계적으로 제시할
계획이었으나 최대 양보선을 미측이 먼저 알아채 카드한번 제대로 내보지
못했다는게 "사전유출론"의 골자다.

이번 협상에서 수석대표를 맡았던 통상산업부 일각에서는 이같은 유출행위
가 통산부를 "물먹이기"위한 외무부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통상교섭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외무부가 수석대표 자리를
빼앗기자 "화풀이"차원에서 흘렸다는 것.

이에 대해 외무부는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외무부 당국자는 "최종타결안인 3백10원, 3백70원은 재정경제원 고위
관계자가 이번 회담에 앞서 미측입장을 타진하러 워싱턴에 갔을때 미국이
자신들의 최저요구선(bottom line)이라며 귀띔해준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이때부터 "3백10원,3백70원"하는 얘기들이 각부처의 차협상
관련 실무자간에 퍼졌는데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며 "이는 외무부에 대한
음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직접 정보를 유출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정부는 또하나의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회담 마지막날인 27일 오전 홍재형부총리 주재로 관계부처장관회의
를 열어 "3백10원,3백70원 수용"이라는 최종훈령을 대표단에 보내기로 결정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몇시간도 안돼 정보가 흘러나와 전신문이 27일 저녁때
발간되는 28일자 가판에 우리측 최종양보안을 실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한국신문 보도내용을 보고 한국이 수용결정을 내렸다고
판단, 이에 덧붙여 "자동차관련 각종제도를 주요수출.입국 수준에 일치
시킨다"는 내용까지 합의문에 넣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훈령내용이 어느부처에서 흘러나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고의 기밀이 유지돼야할 훈령이 쉽게 누출돼 결과적으로 카드를
모두 보여줘버린 정부로서는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