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후 남북접촉 전망은 북경 후속회담개최에 대한 북측의 반응여하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의 세번째 회담은 사흘간 대좌에서 오로지 4차회담을 연다는
원칙에만 합의했지,시간도 장소도 정하지 않고 산회한 것이다.

이석채 남측대표에 따르면 북경회담의 속개 조건으로 회담장소의
한반도내 한정,공식 당국자간 대좌로의 성격규정을 남측이 확고히
제시했고 북측이 이에 답변을 보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따라서 만일 남측의 이 요구가 그대로 수용돼 후속회담이 열린다고
하면 남북한은 비로소 변칙대좌를 청산,오랜만에 당국간의 공식대화로
복귀하여 남북접촉의 새지평을 여는 셈이다.

6월중순 쌀을 의제로 비롯된 북경회담은 비록 15만t의 남한쌀 북송을
성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형식면에선 아무런 성격규정도 없었다.

북의 전금철대표는 대외협력추진위란 민간기구의 고문으로 재경원차관이란
남측대표 신분과는 걸맞지 않았다.

국제교섭에서 형식을 갖추는 일은 회담결과에 대한 권리.의무를 당사국
정부에 귀속시키는 대전제다.

가령 대표권없는 참석자가 고의건 과실이건 어떤 식언을 했다 하더라도
뒤에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그것이 우려 아닌 현실로 나타났다.

북측은 쌀원조에 이어 수재구호 요구등 자신들의 주장관철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으면서 반대로 안목사와 우성호 선원의 신상문제등 남측의
안건제시에는 대표권 없음을 이유로 논의조차 회피하는 무리를 감행했다.

국제예양까지 들먹일 필요없이 이런 북한의 태도가 언어도단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그런 속성을 너무 잘 알면서 요건도 구비안된 대화에 덤벙
뛰어들어 곤혹을 지르는 정부의 반복적 무모성에 대한 지적이 많아 왔다.

그런 뜻에서 3차회담을 끝으로 정부가 회담의 성격 재규정을 요구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우성호송환 등의 현안들이 문제의 성격상 당연히 수재구호에 앞서
선결돼야 할 과제임에도 북측이 불응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회담종용이 무모하다.

이 기회에 우리가 강조코자 하는 것은 정부의 이번 대응조치가 우성호
선원 송환등 시급한 현안해결의 전술수단이 아니라 남북대화 기본전략
수정의 출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현안해결이 지연되는 한이 있더라도 회담의 성격규정과 국내개최
두 조건은 중간에 어떤 작은 대가에 상쇄되어도 그만인 흥정거리가 아니라
반드시 관철돼야 할 핵심 요건이라 믿는다.

북한은 어느하나 심각하지 않은 문제가 없으면서도 그 해결에 미.일.독
등의 협력유도만을 노리고 남쪽의 협력은 그들과의 관계개선에 장애가
안되는 최소한에 그치려는 충동에 빠져 있다.

그들이 그런 피해망상에서 벗어나 남쪽 동포에게 마음을 열리라는 기대는
모든 대안이 막혔다고 느끼기 전에는 충족되기 어렵다.

오는 10일 당창건 50주년을 전후해 여건이 달라질지는 모르나 큰 변화를
기대하긴 아직 이르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