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곧 시행할 계획인 기업의 해외투자 소요자금중 자기자본 의무부과
방침에 대해 재계가 공식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전경련은 지난 2일 주요 기업의 해외투자담당 부서장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금융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방침은 기업의 대외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재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모임은 비록 비공식회의이긴 하나 정부의 이 방침과 관련, 재계가
공식창구를 통해 처음으로 거부감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부와 재계
사이에 큰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의 자기자금 의무조달 요구에 대한 재계의 시각은 한마디로 시대에
역행하는 "뒷다리 잡기"라는 것이다.

첫째 정부가 우려하는 산업공동화는 "경제무국경시대"를 뛰고 있는 기업들
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현지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 것이 국제시장의 흐름으로
볼 때 "산업공동화 논리는 오히려 기회상실을 초래할 것"(전경련 이용환
이사)이란 지적이다.

둘째 반도체 자동차등 전략산업의 해외진출은 억제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국내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정책"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보듯 선진국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통상
압력을 막아내기 위해선 해외생산체제 구축이 불가피하다는 것.

특히 전략산업일수록 해외생산체제는 시급히 갖춰야 한다는 시각이다.

또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선 해외에 생산기지를 세워 현지 인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째 총 외채의 증가로 국가적 부담이 늘어난다는 정부의 논리 역시 단견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요즘 순외채를 따지지 않고 총외채를 지표로 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
(삼성전자 황영기상무)는 것이다.

또 기업의 금리부담 증가로 경쟁력이 악화될 것이란 역논리도 펴고 있다.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할 경우 최소 연리 12%짜리를 사용해야 하지만 해외
기채를 하면 아무리 많아도 6%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10억달러 규모의 해외투자에 국내에서 20%의 자금을 조달할 경우
연간 1백억원이상의 추가 금리부담이 발생한다는 것.

이같은 금융부담은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것이 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재계 일각에서 제기해온 이같은 지적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주력산업의 대규모 해외 이전등에 대해서는 산업정책적 측면과 함께 외채
규모, 기업경영의 건전성 측면에서 건실한 해외투자가 이루어지도록 정책을
추진할 것"(홍재형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이란 원칙론만을 강조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1억달러 이상의 해외투자는 20%, 그 이하는 10%식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원칙을 세운데로 밀어붙이겠다는 태도다.

물론 정부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기업의 해외투자가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해외투자가 무분별하게
이뤄질 경우 기업뿐아니라 국가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게 정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재계의 생각은 다르다.

정부의 방침은 국가나 기업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투자는 기업의 사활을 걸고 치밀한 전략아래서 진행하는 것인데 정부가
탁상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지난 91년 폐지된 규정을 다시 "부활"시켜가면서 까지 민간기업의 "자율"을
저해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정책이 대기업 길들이기 차원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곱지않은 시각을 보내는 측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의 정부와 재계 관계를 볼 때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한데도 이번에 민간기업들이 한 목소리로 정책에 반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재계가 이 방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