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에서는 무엇보다도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심의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과거의 국회운영을 보면 국정감사는 꽤나 요란스레 진행이 되는데
비해 예산심의는 시간에 쫓기거나 다른 사안에 밀려 일사천리 도매금으로
통과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마도 국회의 선량들께서 조그만 숫자를 꼬치꼬치 따져 묻는것보다
정부관료들이 저지른 큰 사건을 호통을 치며 감사하는 것이 지역구민들에게
시원스럽게 잘했다는 칭찬을 더많이 들게하며 또 그것이 후에 표로 연결될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도 숫자를 동원하며 논리적으로 따지면서 예산심의에 공헌하는 모습
보다는 목소리를 높이며 야단을 치는 모습을 더 잘보도해주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그러나 정작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길은 국정감사라기
보다는 예산심의라고 보아야할 것 같다.

정부관료들이 치명적으로 잘못한 일을 제외하고는 국정감사의 결과가 해당
관료들이 앞으로 연구검토하겠다고 약속하는 것 이외에 더 이상 얻어지는
것이 없지 않은가.

고관대작들이 혼쭐나는 모습을 보고 고소해 하는 국민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나 예산심의를 통해 실제적으로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위해 애쓰는
선량들의 모습이 제대로 비쳐진다면 우리 국민들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량들의 예산심의 노력을 언론이 정확히 보도해 주는것도
필요할 것이다.

국회가 예산심의를 철저히 해야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여기서는
관료체제와 관련된 두가지 측면을 생각해 보자.

첫째는 관료체제의 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득을 추구한다.

정치인이 자기가 당선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관료도 자신이 빨리 승진하고
싶어하며 또 자신이 많은 권한을 가지고 싶어한다.

물론 자기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수는 없다.

국가에 보다 많이 봉사하는 사람이 선거에서 당선되거나 빨리 승진하며
또 많은 권력을 누리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국회가 국정감사도 하고, 예산심의도 하고, 또 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관료는 보다 많은 전문성과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국회나
언론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예산을 과다책정하거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곳에 아까운 세금을 낭비해 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관료의 행태를 분석하는 경제학 이론은 관료의 행태를 예산
극대화라는 가설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관료들은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려 하겠지만 각부처가 제각기 자기
부처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자기 부처에 예산을 많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관료체제의 속성에 대한 비판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 예산심의권은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국민들의 세금이 진정코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게끔 쓰여지게 하는 민주주의적 장치라는 점을 선량들
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둘째는 관료와 정치인의 결탁에 의해 예산이 잘못 사용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국회는 행정부의 예산을 되도록 삭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우리 국회에서는 특정 부문의 예산을 증액시켜 주려고 노력
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이는 일부 특정 지역이나 부문에 예산을 증액시켜 줌으로써 자신들을 지지
하는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한 책략일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을수록 국회의원들은 예산 전반에 걸친 심의는 소홀히 하게
되고 또 이런 기회를 활용하여 관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정치인들과
교섭할수 있게 된다.

결국 정치인과 관료의 결탁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일이 결코 여당정치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지금 국회에 상정된 96년 예산안에도 이러한 문제들이 없지 않은 듯하다.

우선 외관상으로 보이는 것은 명분과 실효가 없는 여러 관변단체의 지원금
이 갑작스럽게 40%이상 증액됐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관료들의 자기이득을 위한 예산극대화행위이거나
정치인과의 결탁에 기인한 예산책정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교육예산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그렇게 확대되는 예산을 효율적으로
쓸수 있는 철저한 제도적준비는 과연 돼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것을 기회로 또다른 관료들의 에산극대화행위는
없는지 면밀히 감시해야 하지 않을까.

그외에 여러부문의 문제를 여기서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을 찾아내고 바로잡는 일은 선량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번 정기국회부터는 국정감사도 중요하지만 국민생활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예산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를 고대해 본다.

언론도 어느 국회의원이 어떤 부적절한 예산을 얼마나 삭감해 주었는지
상세히 보도해 주고 국민들은 이를 잘 기억했다가 다음번 선거에 크게 활용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