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지방자치 시행 백일일이다.

사람도 출생후 100일이면 윤곽이 뚜렷해 지면서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고
안도하듯,그간 움튼 지방자치의 떡잎이 예상보다는 파랗다는 호평에
다행을 느낀다.

앞선 지방의회의 시련도 밑거름이 됐겠지만 34년만에 광역 기초 민선
단체장들이 들어서서 석달여 펼친 자치행정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인상은
지역내 민관사이의 거리감 축소,이질감 해소이다.

여타 적지 않은 미흡점이 지적됨에도 불구하고 이 한가지 소득만을
가지고도 지자제 실시는 안하기 보다 하기를 잘했다는 안도의 소리가
널리 들린다.

옛 군주제때는 물론 민주체제가 도입된 이래로도 이 땅에서 지방관의
존재란 목민관 허울과는 너무 동떨어져 실로 귄위주의 학대 수탈
원성의 대명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그 뿌리깊은 부정적 인식이 일신되지 않고는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란 말잔치일 뿐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점검된 지자제 100일의 성과분석에서 중앙권한 이양의
미흡을 필두로 재정제약,수직.수평적인 단체간의 마찰,혐오시설 기피로
대표되는 지역 이기적 민원의 백출,처우불만과 위상혼선등 의회 역할
정립의 지연등 부정적 측면이 산처럼 노출되고 있다.

적지 않은 지역의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본분과는 거리가 먼 언행이
지탄을 받기도 하고 공사혼동이란 빈축을 사기도 한다.

또 더러는 권위주의적 위세,신분과시적 구태를 우려케도 만든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 측면을 능가하고도 남을 근거는 공개행정과 대민
접촉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다름아닌 단체장들 자신의 자세다.

그리고 그 바탕은 자신들을 뽑는 힘의 원천이 상사나 중앙권력에 있지
않고 바로 유권자 주민이라는 인식이며,저들은 내손으로 뽑은 대표라는
주민의 친밀감임은 말할 나위 없다.

만일 당사자들의 그런 인식이 선거후 단기간 한정되는게 아니라 임기
내내 지속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국민들이 품고 씻지 못하는 우려가 한낱
노파심으로 끝날수 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지자제를 둘러싼 그런 우려는 지방 민선직들이 일신과
연고자들의 사적 이익에 봉사키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온갖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다.

아직 인사나 이권등 결정적 비리가 드러나지 않음은 물론 그렇지
않으려는 본인들의 각오가 크게 작용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만일 시일이 지나 주변의 시선이 무뎌졌다고 할때도 그렇겠는가에는
솔직히 반신반의이다.

더욱 중요한 변수는 앞으로 올 인사 인.허가등 중앙권한의 이양이다.

지자제를 할바엔 그런 단계는 꼭 거쳐야 할터인데 그런 연후에도 비리
발생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겠는가가 의문이다.

따라서 이제 단 100일의 성과를 놓고 지자제 성공운운을 예단하기란
경솔한 일이다.

요는 민선 장본인들의 시종여일한 봉사정신에다 종적.횡적인 조정장치와
제도의 완비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담보는 지역사회의 발전을 자신의 일로 여겨
참여하고 감시하고 기여하는 주민들의 살아 있는 자주정신이고 애향심
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