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혁명과는 동떨어진 분야로 인식돼온 화장품업계에도 거센 가격파괴바람
이 불고 있다.

희망소매가격이 곧 판매가 란 등식이 불문율처럼돼온 메이커와 유통업계간
의 밀월관계가 여지없이 무너져가고 있는 것이다.

화장품업계의 가격파괴에 불을 당긴 것은 후지키 가와치야등의 디스카운트
스토어들.

유통업계의 극히 미미한 일각을 차지하는데 그치는 이들이 할인판매를
일반화시키는 일대돌풍을 일으켰다.

디스카운트 스토어들이 판매하고 있는 화장품가격은 정가의 70%선에 불과
하다.

소매점들의 화장품반입가격이 정가의 70%선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
이다.

언뜻보면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염가로 판매할 수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메이커들이 판촉용으로 지급하는 리베이트를 감안하면 실질적 반입가격은
훨씬 낮기 때문이다.

시세이도의 경우 2개월동안 1천만엔이상의 상품을 사들이면 정가의 15%를
리베이트로 지급한다.

금액이 적으면 리베이트비율도 떨어지지만 평균 약10%정도에 이른다.

소매점들의 실제마진이 40%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디스카운트스토어들이 할인판매에 나서자 일반수퍼와 약국체인들도
뒤질세라 가세해 15-20%를 내려팔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유통업체들도 할인판매대열에 뛰어들었다.

이토요카도 세이유등은 이달들어 전국점포에서 일제히 시세이도 가오 고세
가네보사등의 화장품을 정가보다 15%정도 할인해 팔기로 결정했다.

지난8월부터 계열디스카운트점에 한해 할인판매를 실시해 왔던 다이에도
10월부터는 화장품을 취급하는 3백35개 전점포에서 15-25%의 할인판매를
단행하고 있다.

쟈스코는 지난7월부터 이미 10-15%씩을 낮춰 팔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마저 가담한 것은 할인판매의 정당성을 둘러싼 메이커와
디스카운트스토어들의 5년여에 걸친 싸움에서 메이커측이 패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

메이커측대표격인 시세이도는 할인판매의 불을 당긴 디스카운트 스토어들에
대해 체인점계약을 해제하고 상품공급을 중단해 버렸다.

유통질서가 무너질 경우 메이커측의 이익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지난90년4월의 일이다.

그러나 디스카운트 스토어들은 이같은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라며 시세이도
를 법원에 제소해 정면반발하고 나섰다.

양측은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서 1승1패씩을 주고받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6월 시세이도에 대해 가격구속행위를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나서면서 대세는 결정적으로 기울었다.

시세이도는 당초 권고에도 불응했지만 이달5일부터 예정됐던 공정거래
위원회의 최종심판을 앞두고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판매가격을 통제하고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화장품업계의 할인판매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 틀림없다.

현재 화장품의 할인판매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유통업체측에서 자체적으로
판매하는 품목에 한정돼 있다.

메이커측에서 파견사원이 나와 제품설명을 하면서 판매하는 소위 대면판매
상품은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화장품의 경우는 대면판매상품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그러나 업계관계자들은 대면판매화장품의 할인판매도 멀지않아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벌써 디스카운트스토어인 가와치야는 지난9월부터 도매상에서 현금으로
싸게 구입하는 수법을 동원해 대면판매상품들도 15%나 할인판매하기 시작
했다.

다이에의 경우도 자사에서 미용사원을 육성해 판매코스트를 줄임으로써
조만간 이상품들도 할인판매를 단행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화장품업계에도 메이커와 유통업체간의 밀월관계는 이제 종말을 고해가고
있다.

[도쿄=이봉구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