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사회의 애환을 다룬 책들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말 재미교포 이창래씨의 장편소설 "네이티브 스피커"(전2권 미래사
간)가 나온데 이어 이달들어 재미 여성변호사 에리카김의 에세이집 "나는
언제나 한국인"(대원미디어간)이 간행된 것.

두사람 모두 어려서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변호사와 대학교수가 된 "성공한 한국인"들.

이들은 고투끝에 나름대로의 길을 걷게된 체험을 바탕으로 미국내 소수
민족과 교민사회의 애환을 가감없이 전하고 있다.

에리카김의 "나는 언제나 한국인"에는 92년 LA한인타운에서 발생한 흑인
폭동과 93년 자식들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자살한 조경묵목사에 관한 얘기등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김씨는 특히 유죄가 확정된 상태에서 변론을 맡았던 조경묵씨사건은
동양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과 조씨의
영어미숙에서 비롯된 비극의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고 전한다.

조씨는 여자문제로 목사직을 박탈당하고 도미, 사업으로 재산은 모았지만
엄마가 다르고 미국식 정서에 물든 자식들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는다.

구두쇠노릇을 한데다 성격이 급해 주위에서도 인심을 잃었다.

급기야 재산이 배다른 동생에게만 상속될 것을 우려한 큰딸과 작은딸등이
아버지를 성폭행죄로 고소하고 너무나 비참해진 그는 아이들을 붙잡고
울면서 "차라리 너죽고 나죽자"며 푸념한다.

이같은 발언이 한국식정서를 이해못한 미국인검사와 변호사에 의해 살인
협박죄로 변하고 아들녀석의 엉덩이를 두드린 것은 성추행으로 간주됐다.

결국 그는 8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중 자살했다.

조씨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친아버지의
딸추행이라는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이 김씨의 설명.

김씨는 국교 2년때 미국으로 건너가 코넬대정치학과와 UCLA대학원을 졸업
하고 27세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법률회사를 설립해 한인들의 변호와 교민봉사활동에 앞장서는 한편 도산
기념재단을 만들어 교포들의 뿌리찾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창래씨의 "네이티브 스피커"는 이민사회의 아픔을 소설로 형상화한 것.

국내에 소개되기전 미국에서 영어로 발표돼 현지문단과 언론으로부터 호평
을 받았다.

이씨는 오리건대 창작문학부교수로 재직하며 문예창작 실기를 가르치고
있는 교포작가.

소설은 사설탐정소에서 일하는 헨리 박이 존 쾅이라는 한국계 미국인정치가
의 뒷조사를 맡아 그의 선거사무실에 들어갔다가 존 쾅에 대한 이민자들의
조건없는 후원을 보면서 자신의 위상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힘없는 이들의 지지는 거대한 조직논리에 의해 무너진다.

결국 언론은 존의 과거를 폭로하고 유권자들은 등을 돌리게 된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