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확정한 대규모 해외사업에 대한 재무구조 강화 규정이
국내기업들의 현지법인 증자를 가속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도체업계에 우선 그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는 추진중인 미국반도체 프로젝트를 맡을 현지
생산법인 출자금을 당초 계획보다 2배가까이 상향 조정키로 했다.

기존 해외법인에 대한 증자도 서둘고 있다.

자동차 종합상사 등 해외투자가 많은 업종의 기업들도 "증자 러시"에
동승할 모양이다.

기업들의 이런 움직임은 그동안 미세무당국 등이 한국계 현지법인의
출자금이 너무 적다며 "과소자본금(thin capitalization) 제제조항"을 들고
나왔던 것과 맞물려 더욱 활발해질 것 같다.

여기에 한국 정부까지 이번 조치를 통해 기업들의 등을 떼민 결과가 됐다.

11일 삼성전자 관계자는 13억달러 규모의 미국 D램공장 건설계획과 관련,
"현지에 4억달러 가량의 자본금으로 현지법인을 세운 뒤 이 법인이 나머지
소요자금을 현지 조달토록 하는 방안을 짜고 있다"며 "세부 계획이
마무리되는 이번 주말께 한국은행에 사업계획서를 정식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당초엔 현지법인 자본금을 2억달러 선으로 하고 나머지
11억달러를 차입할 계획이었다"면서 "정부 조치에 호응한다는 의미에서
자금조달 계획을 수정키로 했지만 결과적으론 본사 지급보증 부담을 덜게
되는등 긍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미국 반도체생산 기지를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최종 결정했다.

일단은 단독투자 형태로 한은에 계획서를 내되 미국이나 일본업체중
1개사를 택해 합작투자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오리건주에 D램공장을 짓기로 한 현대전자도 현지 생산법인에 대한
출자금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대는 지난 7월 13억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현지법인의
출자금은 1억달러로 하고 <>나머지 12억달러는 본사 지급보증아래 현지에서
기채한다는 내용의 사업계획서를 한은에 제출했었다.

현대는 그러나 한은측이 "사업규모에 비해 출자금이 너무 적다"는 등의
이유로 수리를 거절하자 계획서를 도로 찾아 수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

이 회사 관계자는 "아직 검토단계라 출자금액을 어느 수준으로
재조정할지는 확정하지 않았다"며 "최소한 현지법인 자본금을 2억~3억달러로
상향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업계의 해외 자본금 상향 조정 움직임은 "과소 자본금"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긍정적인 작용을 할 전망이다.

정몽헌현대전자 회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이번 조치가
검토되기 훨씬 이전인 올초부터 HEA(현대전자 아메리카.판매및 연구법인)등
해외법인들에 대한 증자 계획을 추진해왔다"며 "해외 사업구조를 건실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도 자본금을 늘리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삼성전자 황영기자금팀장(상무)은 "미국기업들의 경우 차입금을 포함해
총 자산에 대한 자본금 비율이 평균 30% 이상에 이르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연방 국세청(IRS)에선 이 기준에 미달하는 한국등 외국계 기업에 대해선
"이익 분식(earning''s stripping)"혐의를 걸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금이 적을 경우 나머지 사업자금은 차입금으로 조달할 수 밖에
없는데, 이 경우 이자부담은 손비 처리를 받게 돼 기업들이 결과적으로
탈세를 하는 셈이라는 게 미국세청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경우도 미국등 60여개 해외법인에 대한 단계적인
증자 프로그램을 마련해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금사정이 녹록치않은 국내 기업들의 경우 재경원 조치는 자칫
해외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우려다.

대우전자의 경우 미국이나 프랑스에 6억~10억달러를 들여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방안을 추진해왔으나 "자기자본 조항"이 새로운 돌출
변수로 등장함에 따라 자금조달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형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이번 조치는 국내기업들의 해외투자 패턴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건 분명하다.

특히 대규모 투자의 경우가 그럴 것 같다.

소규모 투자의 경우 "과소자본금" 시비가 빚어지더라도 파장이 크지
않았으나 "대규모 투자에 적은 자본금"에 대해선 현지 정부와의 마찰음이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 재무담당자들에겐 "시련의 계절"이 다가왔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