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에 착수한 이래 지난 30년간
6차에 걸친 5개년계획을 통해 1세대 개발계획을 마무리, 중진 공업국으로
발돋움했다.

지난 30여년간 한국경제의 발전성과를 보면 우선 1인당 GNP가 1961년
82달러에서 1991년 6,498달러로 30년간 무려 79배로 늘어났고 광복 50주년
인 올해 1만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할수 있었던 것은 양질의 풍부한
인적자원을 보유했던데다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경제 제1주의를 표방한 정부의 노력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볼수 있다.

<> 1960년대 <>

해방과 6.25등 혼란기를 지나 근대적인 산업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정부는 62년 1월 "사회.경제적 악순환의 시정과 자립경제 달성의 기반
구축"을 기본목표로 하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경제개발을 시작한 개발초기에는 대량으로 수입되던 주요물자의
수입대체에 힘을 기울여 시멘트 정유 비료공업등 기간산업의 건설이
이루어졌다.

이와함께 개발기반의 구축을 위한 전력 철도 도로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에도 역점이 두어졌다.

60년대 중반이후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상대적으로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
하기 위해 대외지향적 공업화전략을 채택, 섬유 합판 가발 신발류등 노동
집약적 경공업 육성에 주력하면서 수출증대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다.

당시 개발과정을 평가해보면 전반기에는 수입대체를 위한 기간산업육성에
주력한 결과 발전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60년대 중반이후 외자도입
등을 통해 수출산업의 시설능력이 크게 확장되고 수출도 대폭 늘어남에 따라
높은 성장과 고용증대를 이룩할수 있었다.

60년대 전반기 6.4%에 달했던 경제성장률이 후반기에는 10.4%로 높아진
것이나 65년 1억7천5백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규모가 70년 8억3천5백만달러
로 4.8배 증가한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1인당 GNP는 60년 79달러에서 70년 2백53달러로 10년간 3.2배 증가했다.

<> 1970년대 <>

3.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으로 70년대 대외경제여건은 72년 이후
국제통화체제의 혼조,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73년과 79년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등으로 전반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

60년대 이후 추진해오던 노동집약적 경공업전략은 70년대에 들어와 국내
임금의 상승, 기술축적의 미흡, 개발도상국과의 경쟁등으로 점차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 정부는 70년대 중반부터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고도화 노력을 본격 추진했다.

중화학공업의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국민투자기금이 조성되었고 주요
업종별로 각종 육성법을 제정, 지원을 확대해 나갔다.

재정에서도 산업기지건설 도로 철도 항만 공업용수개발등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대한 투융자를 확대해 나갔다.

또한 주곡인 쌀의 자급달성과 도.농간 불균형 시정에도 정책의 중점을
두어 2중 곡가제를 통한 농가소득보전, 농업생산기반 확충을 위한 투자확대
에도 중점을 두었다.

70년대의 개발과정을 평가해보면 수출증대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지속할수
있었던 반면 중화학공업을 단기간내에 육성하려는 정책의지가 앞장서 국민
경제의 자금 기술 인력공급 능력의 범위를 넘어 급속히 추진됨에 따라
부동산투기및 인플레이션의 확산, 급속한 임금상승등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1인당 GNP는 71년 2백89달러에서 80년 1천5백97달러로 10년간 5.5배
늘어났다.

<> 1980년대 <>

80년대 들어서면서 과거 70년대부터 문제가된 인플레적인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특히 80년에는 정치사회적 불안과 이에따른 노사분규의 확산, 여기에 흉작
까지 겹쳐 성장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차 석유파동의 여파와 그동안 과도한 중화학공업 투자에 따른 후유증으로
인플레 심리가 확산, 물가도 크게 상승했다.

70년대 평균 8.9%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이 80년 마이너스3.7%로 떨어진
것은 국민경제에 커다란 주름살을 안겨주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0년대 평균 15.2%에서 80년에는 무려 28.7%로 올라
갔다.

이에따라 정부는 만성화된 인플레이션을 치유하고 중장기적인 성장기반
확충을 위해 경제안정화에 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면서 자율과 개방을 통한
경쟁촉진 시책을 펴나갔다.

통화 재정등 총수요관리를 강화하는 한편 임금 쌀수매가 인상도 최대한
억제하고 84년에는 공무원 임금을 동결하기도 했다.

이와함께 81년 공정거래법을 제정, 경쟁질서 확립 노력과 함께 수입자유화
등 대외개방정책도 추진했다.

82년부터 물가와 임금이 안정되는등 안정화정책이 다소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으나 지난친 총수요관리로 성장잠재력 배양에는 다소 소홀할수 밖에
없었다.

85년 이후 대외여건은 저유가, 저금리, 엔화에 대한 달러가치의 하락등
소위 3저현상을 맞아 경제 전반에 활력이 넘치게 됐다.

3저 현상외에 80년대 초반이래 추진해온 안정화시책에 힘입어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86년부터 큰 폭의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흑자의 확대는 미국등 선진국으로부터 개방압력을 유발하는 계기가
됐다.

과다한 국제수지 흑자가 국내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통상마찰
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수지 흑자관리시책을 추진, 외채를 조기에 상환하고
통안증권 발행등을 통해 통화환수에 나서기도 했다.

수입자유화를 확대하고 관세인하등을 통해 수입수요를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였다.

대내적으로는 87년 6.29선언이후 정치민주화가 급속히 진전됨에 따라 사회
각 계층으로부터 형평및 복지증진에 대한 요구가 크게 증대되었다.

노사분규와 높은 임금상승속에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고 각종
이익집단의 욕구분출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정부는 전국민 의료보험실시등 각종 복지제도를 도입하고 토지공개념제등
부동산투기억제 시책, 조세부담의 형평제고를 위한 세제개편, 경제력 집중
억제및 지역간 불균형 완화시책도 적극 추진됐다.

80년대 후반의 경제를 평가해보면 민주화 자율화 개방화과정에서 임금상승
및 노사분규, 통상마찰등을 겪었으나 고도성장을 유지했던 시기였다.

1인당 GNP는 81년 1천7백41달러에서 91년 5천8백83달러로 10년간 3.4배
늘어났으며 89년 5천2백10달러를 기록, 최초로 국민소득 5천달러를
넘어섰다.

<> 1990년대 <>

90년대 들어 한국경제는 그동안 고도성장의 여파로 소비및 건축등 내수가
과열되고 임금상승에 따른 경쟁력약화등에 따라 부동산투기및 인플레가
재연되고 국제수지도 적자로 반전되는등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민주화과정에서 나타난 임금및 부동산가격 상승과 사회간접자본부족
등으로 제조업분야의 경쟁력 약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같은 성장률 하락, 제조업경쟁력 약화, 국제수지적자 등으로 한국경제는
아시아의 네마리용에서 탈락하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받기도 했다.

이에따라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세계화, 규제완화등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으며 이같은 내용을 담은 신경제5개년 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또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금융소득종합과세제 실시로 음성 불로소득의
양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93년 5.6%에 머물던 경제성장률은 94년 8.4%로 높아졌고 올해는 9.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물가 상승률도 올해는 90년대들어 처음으로
연평균 5%이내로 안정될 전망이다.

내년에는 경기상승이 올해보다는 다소 완화될 전망이지만 7%대의 성장은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 2000년대 <>

한국경제는 향후 10년간 7%대의 성장을, 그후 20년간은 대체로 5~6%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전제로 한국의 미래상을 그려보면 2001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2005년께에는 3만달러를 각각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또 2010년에는 4만2,550달러, 2020년에는 7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이 국민소득 1만달러 수준에서 2만달러로 진입한 기간을 보면
일본은 4년, 미국 스웨덴은 10년, 독일 12년, 프랑스 11년, 스위스 8년,
캐나다 9년등이다.

한국은 일본보다는 길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비교적 단기간인
6년만에 국민소득이 두배가 되는 셈이다.

경상 GNP는 2001년 9,697억달러, 2010년 2조1,140억달러, 2020년 3조
9,090억달러로 늘어날 전망이어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올해 11위권에서
2001년에는 8위, 2010년에는 미국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에 이어
7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대가 되면 국민생활도 크게 바뀌어 지금까지는 별개인 컴퓨터 전화
TV 팩시밀리등이 하나로 통합된 전자기기 사용이 일상화되고 정보고속도로
덕분에 집에서 3차원 그래픽과 비디오 영상을 통해 상품을 주문하고 지방
에서 대도시 의료진과 장비의 도움을 받아 원격진료를 받는 세상이 오게
된다.

또 서울에서 전세계 유명교수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자기 사무실에서
비디오화상회의에 참가하는 것과 원하는 사람에게 멀티미디어 우편을 보내는
것도 일상화된다.

산업도 크게 변모, 농.축.수산업 광업등 1차산업은 거의 사라지고 생명공학
유전자공학등을 응용한 첨단농법의 등장으로 식량문제도 거의 완전히 해결될
것이다.

또 광전자를 이용한 첨단제조업 우주항공 해양등 신개발산업, 전문
컨설팅업, 실버산업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된다.

< 김선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