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치혁신의 차례다"

정치권의 환골탈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이상 정치가 경제에 부담을 주는 "미운 오리새끼"로 비하되지 않도록
일대 구조개편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십년간 지속되고 있는 지역주의와 명당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이제는
과감히 떨쳐버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해보자는 것이 그 주된 기류다.

이같은 움직임은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여야의 초.재선의원들과 정치권에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해가고 있는
소장파 전문가그룹이 주도하고 있는 정치혁신바람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기성찰에서 출발하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공직자재산공개,정치군인숙정,금융실명제.부동산
실명제로 대표되는 일련의 개혁조치가 단행됐으나 그 착근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더 우세하다는게 이들의 견해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생산성이 과거에 비해 그다지 향상된게 없다는 얘기고
우리 정치가 4류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재계의 냉소적인 반응도 같은 맥락
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박인제변호사의 진단은 정치혁신의 논거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민자당 여의도연구소 주최 정책간담회에서 그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
를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가 너무 많은 정치, 둘째 너무 비싼 정치, 셋째 너무 먼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가 법치에 앞서고 잘못된 관행이 제도에 우선하는 현실을 볼때 아직도
정치과잉인 상태이며 그런 측면에서 정치혁신의 여지는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다.

또 정치비용이 너무 과다해 그야말로 가진 자들의 정치요, 생활정치를
내걸고는 있지만 민생과는 동떨어진 정치가 지속되고 있다는게 그의 진단
이다.

박변호사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국민 대다수가 정치라면 거의 반사적
으로 혐오감을 표시할 정도로 우리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국민의 답답함을 속시원하게 풀어
주기는 커녕 정치적 불안감만 깊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혁신 추진주체들은 생산적인 정치, 효율적인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보스중심의 정치를 하루빨리 청산해야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재의 정당들은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연 학연 혈연등으로 인맥이
얽혀있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스의 선택에 따라 정당의 간판은 언제든 뒤바뀔수 있고 그의 말한마디로
정치생명이 좌지우지되는 일도 다반사다.

정치혁신을 부르짖고 있는 차세대들은 3김시대가 막을 내리면 "줄서기"로
화화되고 있는 보스정치도 종언을 고할 것으로 보고있다.

이들은 3김의 연령이 문제가 아니라 독선적인 정치스타일이 시대흐름과
맞지않는다는 주장을 편다.

차세대들은 보스정치가 그리 멀지않아 "일본개조론"을 주창한 일본정치권
의 거목 오자와 이치로신진당간사장의 말처럼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해보는것"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연대가 정치권을 더욱 투명하게 분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경우 정치권이 기업 못지않게 정책 이념 아이디어개발등 "품질경쟁"에
열을 올리며 명실상부한 국민정당으로 발돋움하려는 양상을 보일것이 분명해
정치의 새 지평이 열리는 셈이다.

여야의원중 상당수가 이미 이후의 정치개혁을 위한 스스로의 체질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나름으로 기반을 굳힌 30~50명선의 전문가들로 자문그룹을
구성해 방향잡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움직임이다.

자유와 공정, 공개 원칙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내세우고 있는 향후 정치권
의 생명력을 좌우할 명제다.

이 명제가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의 뜻과는 거리가 먼 야합이
지속돼왔고 여야 가릴것없이 정책추진의 차별성과 방향성을 상실해왔다는게
이들의 판단이다.

정치혁신의 방법론을 두고는 차세대들간에도 견해차가 적지않다.

한 부류는 드러난 문제를 고치지 않고 방치해두거나 미온적으로 다루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경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을만큼 시대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오류"에 대해서는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른 한 부류는 모든 사안은 물흐르듯 다뤄야하고 "깜짝쇼"보다는 정책
이나 제도의 연착육이 가능한 점진적 개선과 개량방식을 택해야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과 관련,재계에서는 국경을 넘어 실익추구와 전문성
을 추구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상응하는 정치권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의 울타리를 떠나 시야를 세계로 돌리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정치권이 "배려"를 "특혜"로 치부해버리는 기존인식을 바꿔 동반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시하고 있는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만하다.

쌍용그룹의 김동현이사는 "어느 한분야에 오래 있으면 존경받는 위치에
있게 마련인데 우리 정치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인것 같다"며 정치권이
신뢰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대우의 민병관이사는 "미국의 경우 정치권이 관련업계의 주장을 수용
해 통상문제에 관한한 외국국가들에 부당하다싶을 정도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 "우리도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기업인들을 일종의 자문위원
같은 형식으로 기용하는 방안을 모색할만하다"고 제안했다.

<김삼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