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의원(민주당)이 19일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4천억원이 40개 계좌
로 나뉘어 시중은행에 분산 예치되어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금융계가 초긴장
하고 있다.

특히 박의원이 직접 거명한 신한은행과 동화은행은 이날 다른 업무에는 거
의 손을 대지 못하고 당시 관련업무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문제의 계좌가 실
제 존재하는지 여부를 파악하는등 벌집을 쑤셔놓은 분위기였다.

정치권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계좌가 야당의원에 의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이상 검찰에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가능성 마저 커 은행권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박의원이 주장한 차명계좌가 실명제 실시전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밝히고 있고 은행감독원도 조사
에 나설 뜻이 없다고 맞장구치고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불
투명하다.

<>.신한은행 이우근 이사대우 융자지원부장(93년 당시 서소문지점장)은
이날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소문지점장 재직시절 1억~10억원
짜리 수표 3백억원을 받아 자신의 처남등 3명의 소유기업명의로 기업금전
신탁예금을 만들어 줬으나 이 돈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른다고확인.

이 이사는 그러나 한국은행기자실에서 정식 기자회견을 갖자는 기자들의 요
청을 받아들여 신한은행본점을 나서던 도중 "사무실에서 명함을 갖고 오겠다
"며 자신의 사무실로 다시 올라간뒤 그대로 잠적.

금융계에선 이를 "이이사가 너무 쉽게 "사실"을 확인해준데 대해 누군가가
제동을 건 것"아니냐는 눈초리.

신한은행관계자는 "이이사가 평소 6공때 청와대고위층으로 근무했던 친인척
과 가까웠다는 설이 은행내부에 많았다"며 "이이사가 서소문지점장에서 곧장
이사대우로 승진한 것도 이 "사건"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 같다"며 나름대
로 분석.

<>.동화은행은 93년초 영업당담임원이었던 신성우씨(현 제일상호신용금고
부사장)가 은행을 떠나있어 직접 확인하지 못한채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

한관계자는 "박의원이 동화은행을 1백억원짜리 비자금계좌가 존재하는 곳으
로 지적했으면 신한은행처럼 누구 명의로 어느지점에 있는지도 함께 얘기해
줬어야 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물증없이 얘기를 꺼내는 것은 곤란하지 않느
냐"고 얘기.

상업은행은 비자금 4천억원이 93년 1월말까지 이 은행 효자동지점에 입금되
어 있었다는 박의원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부인.

은행측은 "효자동지점의 수신실적을 확인한 결과 93년 1월이전이든 이후든
수신고가 4천억원을 넘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며 "총수신고가 5백억~6백억원
에 불과한 소규모지점에 누가 그런 거액을 예치하겠느냐"고 설명.

<>.은행감독원장을 지냈던 이원조씨가 당시 몇몇 시중은행 임원들을 소집,
차명계좌를 확보하도록 지시했다는 박의원의 주장에 대해 금융계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관련 사실을 극구 부인.

이전의원과 함께 근무했던 은행감독원 간부들은 "이씨는 평소 전무조차도
상대하지 않고 은행장들도 골라서 만났던 인물"이라며 "그런 그가 은행상무
들을 한꺼번에 여럿 불러모아 놓고 얘기를 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반
응.

김용진은감원장은 이날 "신한은행이 실명법등 관계법규를 어긴 적이 없으므
로 은감원차원에서는 조사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 육동인.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