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위치한 휴렛팩커드(HP) 본사 중앙연구소에는
인도출신의 연구원 찬드라 벤카트라만(34)이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인도 교포 2세로 스탠포드 대학을 나와 현재 HP에서 주문형비디오
(VOD)와 관련된 개발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주로 맡은 일은 각종 통신망을 이용해 VOD서비스와 대화형TV서비스를
기술적으로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찬드라는 자신의 경쟁상대를 IBM이나 실리콘그래픽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문형비디오의 현재 적수는 "블록 버스터"라는 판단이다.

블록버스터는 미국 전역에 매장을 갖고 있는 비디오테이프 대여전문업체.

국내에도 동네마다 있는 비디오 대여가게를 체인화한 기업이다.

찬드라의 꿈은 VOD로 볼 수 있는 영화 한편의 가격이 블록버스터에서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빌리는 값인 2달러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다.

VOD가 사용자들에게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이 VOD에 들어있다고 해서 일반인들이 비디오테이프가게를
찾는 대신 VOD용 리모콘을 누르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그같은 생각은 시장과 사람에 대한 이해와 고려없이 오로지 기술만을
중시하는 기술우월주의에서 나온다.

VOD는 주말에 가족의 손을 잡고 동네 나들이를 하다 비디오테이프 가게를
들려 각자 좋아하는 비디오를 한개씩 골라 집으로 돌아오는 즐거움을
제공하지 못한다.

어둠속에서 대형화면을 지켜보며 팝콘과 땅콩을 나눠먹는 오붓함도
VOD에는 없다.

가격대 효과를 고려하면 VOD는 아직까지는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요구되는 "값비싼 영화보기"다.

찬드라는 VOD의 통신규격을 정하기보다 사람에게 보다 가깝고 친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어렵다고 고민한다.

그는 자신의 개발물에 "세계 최초의 기술개발"이나 "업계 처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기보다는 인간에게 편리하고 시장성이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기 원한다.

또 2백여년간의 영국 식민지배의 아픔을 딛고 정보화 시대에 소프트웨어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도의 정보화에 기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승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