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비자금사건의 각 과정마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는지 여부를
가려야하는미묘한 사안들이 많이 있다.

과정마다 일어난 실명제위반을 알아본다.

먼저 이우근 당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의 말대로 은행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차명을 알선한 행위는 어떻게 볼것인가는 문제다.

우선 이 예금이 금융실명제실시(93년8월12일)이전인 92년11월부터 93년
3월 사이에 입금됐기 때문에 알선차명이라도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다음은 박계동의원이 이 자금의 거래내역을 파악한 과정이 문제다.

박의원주장대로라면 신한은행 이지점장이 3백억원의 예금이 들어왔고
이중 1백억원이 우일양행 하범수씨 명의로 돼있다는 사실을 하씨의 아들인
하종욱씨에게 공개한 셈이된다.

이것도 예금자의 비밀을 보장한 긴급명령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이우근신한은행이사대우(당시 서소문지점장)이 기자회견에서
3백억원의 입금과정을 밝힌 것도 예금자의 비밀보장조항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은행감독원도 이 인터뷰가 금융실명제위반이라는 사실을 신한은행측에
통보했다.

19일 이이사대우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3백억원이 노대통령의 자금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다보니 무의식중에 예금자의 비밀을 모두
"불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이 지난 17일 우일양행(사장 하범수)
명의로 발행한 예금잔고조회표가 문제다.

재경원은 잔고조회도 거래의 일종이기 때문에 금융실명제의 적용대상
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이 예금잔고조회표를 예금명의자인 우일양행이나 위임장을 가진
대리인이 가져갔으면 문제가 없으나 우일양행과는 법률적으로 무관한
하범수사장의 아들 하종욱씨가 떼어갔다면 이것도실명제위반에 해당된다.

재경원은 잔고조회표를 떼간 상황을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이부분의
실명제위반여부에 대해서는 해석을 못내리고 있다.

결구 금융기관종사자나 거래자가 모두 실명제의 내용을 정확히 몰라
무의식중에 실명제의 가장 핵신사항중의 하나인 거래자비밀보호조항을
휴지짝처럼 짓밝았다는 평가가 가능해졌다.

<안상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