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배제인가, 아니면 자발적 불참인가.

다시말해 못끼었나,안끼었나.

미국 IBM과 모토롤라 독일 지멘스 일본 도시바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이
"반도체 3국동맹"을 구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산업계가 던지는
의문이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인 1기가 D램을 공동개발한다는 게 동맹의
목적이라면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등 메모리반도체의 선두주자가 왜 빠졌냐는
것이다.

더구나 삼성은 일반D램 분야에서,현대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싱크로너스분야에서 2백56메가 시대를 처음 열어제낀 장본인들이다.

"3국동맹"이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당연히 삼성
현대가 제휴대상에 포함됐어야 한다.

그런데도 미주 유럽 아시아를 잇는 "3각편대"에 국내 업체들의 명단이
빠져있다.

그래서 산업계에선 삼성 현대가 혹시 따돌림을 당한 것 아니냐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다.

"3국동맹에 참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삼성전자 권오현상무).

그러니까 국내업체는 따돌림 당한 것도 못낀 것도 아니다.

낄 필요도 없고 끼게도 돼 있지 않다.

끼게도 돼있지 않다는 것은 개발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메모리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크게 두가지 방법이 있다.

스택(stack)과 트렌치(trench)다.

스택은 웨이퍼 위에 전도체를 얹는 방식이다.

반면 트렌치는 웨이퍼를 파고 그 사이에 전도체를 끼워넣는 것.

쉽게 말하자면 땅을 파고 지하에 방을 만들 것이냐 아니면 지상에
고층빌딩을 세울 것이냐로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스택은 반도체 제조가 쉽다.

반면 트렌치는 칩 면적을 축소하는 데 유리하다.

트렌치는 메가 이전의 "킬로시대"에 주류를 이뤘다.

개발경쟁이 본격화된 메가시대부터는 제조가 쉬운 스택으로 주류가
변화됐다.

삼성 현대등 대부분 반도체 제조업체는 현재 스택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업체 뿐 아니다.

올해 초 비록 프로토타입의 "공포탄"이긴 하지만 1기가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던 일본 NEC도 스택으로 반도체를 만든다.

히타치나 미쓰비시전기도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미국 TI(텍사스인스투르먼츠)도 예외가 아니다.

트렌치로 메모리반도체를 만드는 회사는 이번에 제휴를 맺은 4개사뿐이다.

2백56메가D램에서도 이미 트렌치방식으로 공동개발체제를 구축한
이 회사들은 사실 세계 메모리반도체 업계에선 마이너리그에 속한다.

그러니까 반도체 3국동맹은 "트렌치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삼성등은 애초부터 이 컨소시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국내업체들이 반도체 3국 동맹을 무시할 수는 없다.

도시바 IBM 지멘스 모토롤라는 사실 어디에 내놔도 꿇리지 않는
회사들이다.

이들이 힘을 합쳐 기술을 개발해 이익을 공유할 경우 그 파장이
간단치 않을 것은 분명하다.

각사가 제품을 동시에 쏟아낸다면 국내업체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국내업체는 이번 반도체 3국동맹 결성에 따라 이중으로 쫓기는 입장이
됐다.

메모리반도체시장을 리드하면서 또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서도 앞서가야하는
이중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삼성 현대등이 어떤 전략으로 세계 최고의 위치를 수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