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로 입금된 3백억원이 노태우전대통령의 정치자금으로 밝혀지기
까지 그 경위와 배경에 대해 석연찮은 점이 몇가지 지적되고 있다.

우선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의 "3백억원은 노전대통령의 통치자금이다"는
전격적인 발표를 들 수 있다.

안중수부장은 박계동의원의 문제제기로 확인된 신한은행 3백억원
차명계좌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서 기자들의 비난을 받을정도로
"수사내용 함구 방침"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이현우씨가 대검청사에 도착한지 1시간도 채 안된
상태에서 게다가 정례 브리핑도 아닌 자리에서 공개됐다.

그동안 조그마한 수사내용의 보안에 신경을 쓰던 중수부장이 그토록
갑작스럽게 비공개석상에서 공개하게 된 이유와 배경에 의혹이 쏠리는
것.

이씨가 검찰에 자진 출두했는가 하는 점도 석연잖다.

오후 2시쯤 청사에 나온 안중수부장은 "이씨가 오전에 전화를 해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자진해서 왔다"며 어떤 외압이나 사전조율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안중수부장은 기자들이 "검찰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검찰이 수사만하면 되지"하면서 애써 답변을 회피해 이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또 하나는 이씨의 출두 동기.이날 오후3시30분쯤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를타고 도착한 이씨에게 기자들은 "하고싶은 말을 다하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이씨는 "3백억원은 내가 관리하던 것"이라며 처음으로 입을
뗐다.

이후 계속되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조사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를두고 이씨가 자진출두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검찰과의 사전
교감, 더깊이는 정치권과의 사전조율이 있지 않았을까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방향은 정치자금으로 판명된 이 돈의 조성경위로 급진전
됐지만 수사의 전환이 단순히 이씨의 발언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