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화국의 비자금파문이 경제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그런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오던 증시가 급락세로 돌아섰고 금리마저
출렁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의에 의해서건 강요를 받았건 자금을 건네준 기업과 기업인들은 자신의
이름이 거명될 것을 우려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번사건에 관련된 은행에선 큰 폭의 물갈이가 예상돼 뒤숭숭한 분위기다.

아직은 수사초기여서 실물경제의 동요현상까지는 나타나지는 않고 있으나
이미 전반적인 분위기는 냉각돼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전개될 양상에 따라 경제전체가 혼돈속으로 빠져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는 게 경제계의 인식이다.

특히 전반적인 경기가 이미 하강국면으로 진입,그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싯점에서 이같은 악재가 겹쳐 내년경제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참담
한 모습으로 일그러질 수 있다고 걱정하는 시각까지 대두되고 있다.

우선 가장 걱정되는 대목이 자금시장의 동향이다.

비자금의 규모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커지면서 증권시장은 22일 큰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한동안 지속돼온 1천포인트선이 지난20일 무너진데 이어 내림세를 지속해
이달초의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대개의 경우 정치사건이 터져도 증시에는 일과성 악재로 그치는게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이번에는 굵직한 대기업들의 상당수가 얽혀 들어갈 것이란
소문이 나돌면서 쉽게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더군다나 증시는 소문에 발이빠른 속성으로 인해 특정기업인과 정치인의
이름이 거론되는등 온갖 "악성루머"가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지난 추석이후 계속 하향안정세를 보여온시중실세금리가 이날 오전한때
오름세로 돌아섰었다.

다시 보합세를 되찾았지만 시장관계자들은 심리적인 영향으로 인해 하향
안정세의 큰 흐름에 변화가 올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분간은 큰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은행등의 금융기관도
몸을 사릴수 밖에 없어 아무래도 돈의 흐름이 경색되지 않겠느냐는 전망
이다.

더 큰 문제는 의욕의 저하에 있다는게 경제계의 이구동성이다.

깨끗하지 않은 돈이 오고가기는 했지만 과거청산 때마다 기업인이 휘말려
들어 가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되풀이돼 기업의욕을 떨어트릴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압력에 의한 자금제공이 "정경유착"으로 평가받고 세월이 흐른 뒤에 "불법
행위"로 단죄받는 현실에서 어떻게 기업을 하라는 것이냐는 얘기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현역 국회의원들이 속출하듯이 기업을
때려치우겠다는 기업인도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다.

설사 시장이탈까지 가지는 않는다 치더라도 국민들에게 기업인을 백안시
하고 부를 죄악시하는 시각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 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정치인및 정책당국 사이에 불신의 벽이 쳐지고
이것이 투자위축으로 현재화된다면 우리경제는 몇년뒤로 퇴보할 수 밖에
없다는게 경제계의 우려다.

물론 계획적으로 돈을 들고 권력을 좇아가 반대급부를 얻은 기업인이
있는게 사실이어서 자금제공자인 기업인이나 경제계를 "피해자"로 볼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개발연대이래 지속된 관치경제가 과거청산 때마다 기업인을 종범
으로 만들고 경제를 멍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인 만큼 단죄의 파장이
경제로는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게 중론이다.

< 정만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