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팔아요-"

60년대말 도시 변두리 골목길에서 흔히 들을 수 있던 소리다.

동네 아낙네들이 긴 머리채를 싹뚝 잘라 팔고 끼니거리를 준비하던 모습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의 빛바랜 풍속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한국 수출의 주력상품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기도
했다.

바로 가발이 한국 전체수출의 10분의 1을 넘던 때의 일인 것이다.

"수출 1,000억달러"라는 금자탑을 세우기까지 한국이 해외시장에 내다 판
상품들은 실로 다양하다.

이들 상품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한국 산업의 발자취가 그대로 드러난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던 시절 부인네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에서
부터 연간 100억달러이상 나가는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그동안의 수출주력
상품은 국내 산업구조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

해방직후부터 6.25까지의 수출상품은 사실 "상품"이라고도 할수 없는
것들이었다.

김(해태) 한천 오징어 생선등 수산물이 대종을 이루었다.

6.25이후 50년대엔 생사 모피 중석등이 수출되기 시작했다.

56년엔 흑연 수출이 2,000만달러를 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60년 통계를 보면 산돼지(생돈.70만달러) 쌀(380만달러) 무연탄(120만달러)
등이 홍콩이나 일본에 수출된게 눈에 띈다.

61년 10대 수출상품을 보더라도 광산물과 농산물이 대부분이다.

당시 1위는 철광석으로 530만달러 어치를 수출해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다음은 중석 생사 무연탄 오징어 활선어 흑연등이었다.

수출도 "하늘만 쳐다봐야 했던" 한국이 그나마 자신감을 갖고 수출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64년 이후로 볼수 있다.

당시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하면서 공산품의 수출비중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던것.

당시의 주력상품은 섬유 봉제 가발 합판등.

노동집약적 상품이긴하나 이들 제품은 수출입국의 초기견인차 역할을 한다.

65년 시작돼 71년에 5,0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리겠다던 "봉제품 수출
진흥 7개년 계획"은 목표보다 3년 앞서 68년에 달성했다.

스웨터등을 비롯한 메리야스 제품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스웨덴 국민중
절반이 한국산 스웨터를 입었다는 얘기까지 남아있다.

80년대말 전기.전자가 최대 수출품목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수출=섬유"라는
등식은 계속됐다.

합판은 미국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일본의 수출축소와 미국의 건축붐
확대로 급속히 확대됐다.

60년대의 수출 특징중 또다른 하나는 "월남 특수".

월남전쟁으로 철강 자전거등 기계류와 염료 사카린등 화학제품등이 모두
수출호황을 누렸다.

전무후무하게 음식이 주요제품 리스트에 올랐던 것도 이시기다.

전쟁중 병사들의 휴대식량인 "C레이션"이 68년 1,274만달러 어치나 수출돼
수출순위 13위에 랭크됐으며 파월 국군장병들을 위해 볶음고추장 김치
볶음밥등으로 만든 "K(Korea)레이션"은 나중에 가공식품 수출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70년대엔 두가지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바탕으로한 공산품 수출의 급증.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공산품의 비중이 90%를 넘기 시작한 것이다.

또다른 하나는 오일쇼크로 인한 공산품내 주력상품의 교체다.

우선 꼽을 수있는게 합판의 퇴진.

1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미국내 건축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리자 72년까지만
해도 1위자리를 지키던 합판이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신 선박과 자동차가 주요수출품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74년말 현대중공업이 그리스에 초대형 유조선(VLCC)을 첫 수출해 "조선
입국"의 기틀을 다졌고 76년 6월엔 한국산 포니승용차 6대가 에콰도르에
처녀 수출되기도 했다.

이에앞서 73년에는 포항제철이 제1고로를 완공해 철강제품수출에 나섰다.

70년까지만 해도 수출순위 4위에 올라있던 철광석이 리스트에서 사라진
것도 이때다.

전자제품도 폭발적인 수출증가세를 보여 섬유류에 이어 2위에 올라섰었다.

8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수출상품의 고도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중화학제품의 수출비중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70년에야 갓 10%선을 넘었던 전체수출에서의 중화학제품 비중은
80년 40%를 돌파했다.

일반기계류와 자동차 화공품등이 수출주력군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등 전기.전자제품 수출도 급신장해 80년대말 섬유의 "20여년 아성"인
수출 1위자리를 빼앗았다.

선박도 85년 50억달러어치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70년대 40%를 자치했던 섬유류의 비중은 20%대로 낮아졌다.

90년대 들어 이런 추세는 가속됐다.

94년 10대수출품목을 보면 1위는 반도체등 전자부품으로 총 178억2,7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전체수출액의 20%를 넘는 비중이다.

2위는 직물로 87억9,400만달러, 3위는 가정용전자제품 71억1,100만달러,
4위 섬유 66억9,100만달러, 5위 자동차등 수송기계 64억3,500만달러등의
순이었다.

그뒤는 철강(55억8,700만달러) 산업용전자(54억6,200만달러) 선박(49억
4,800만달러)등이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의 수출산업은 아직도 핵심부품등 자본재를 선진국에 의존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있다.

수출을 많이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기계나 부품의 양이 늘어나
대일적자가 확대되는게 대표적 사례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던 시대를 회상하며 감격만 할게 아니라 앞으로 제품의
고부가가치화와 핵심부품 국산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도
그래서 나온다.

이게 바로 수출 1,000억달러 시대에 한국이 풀어야할 과제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