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은 기자회견 예정시간인 오전 11시 정각 2층 내실에서
내려와 침통한 표정으로 회견장인 1층 접견실로 천천히 걸어 들어온뒤 미리
준비한 대국민 사과 회견문을 약 9분에 걸쳐 천천히 낭독.

노씨는 "못난 노태우,외람되게 국민여러분 앞에 섰습니다"라며 "이자리에
서 있는 것 조차 말로는 다할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회견문
낭독을 시작.

그는 <>국민의 분노와 자신에 대한 질책 <>통치자금 조성경위와 규모,
사용처 <>사법처리등 국민심판수용 <>기업인에 대한 수사확대 불원등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거듭 사죄.

노씨는 전국민의 들끓는 분노를 의식한듯 회견문 곳곳에 "지난 며칠간
얼마나 많은 허탈과 분노를 느끼셨느냐" "저를 향한 국민의 솟구치는 분노와
질책은 당연한 것"이라고 심하게 자책.

노씨는 시종 거의 고개를 들지 못했으며 마지막에 "속죄하는 길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대목에 이르자 감정이 복받치는듯 잠시 말을
멈춘채 멍하니 앞을 응시하기도.

노씨는 또 "국민 여러분이 내리시는 어떠한 심판도 달게 받겠다" "어떠한
처벌도 어떠한 돌팔매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며 만감이 교차하는듯 오른손
으로 눈을 훔치기도.

<>.기자회견이 있었던 이날 연희동에는 최석립 전경호실장을 제외하고는
내방객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

서동권 전안기부장은 이날 오전 광화문 사무실에서 TV를 통해 지켜본뒤
외출했으며 정구영 전검찰총장은 오전에 제사를 위해 고향인 하동으로 출발.

정해창 전비서실장은 아침 일찍 외출한뒤 향방이 묘연한 설정인데 측근들과
향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

한편 노씨 회견에 대해 연희2동 전두환 전대통령측은 사안의 민감성 때문
인듯 무반응으로 일관.

26일 북한산 산행을 다녀온 전씨는 이날 세간의 시선을 피하려는듯 오전
10시께 이순자여사와 함께 외출했는데 한 측근은 "외부에 행사가 있어
나갔으며 오후 늦게나 돌어오실 것"이라고 설명.

연희동 비서진은 노씨 기자회견 장면을 녹화했다는 후문.

전씨 핵심측근인 이량우변호사와 장세동전안기부장등은 이날 오전 사무실에
잠깐 들른뒤 기자회견에 앞서 대부분 외출.

<>.대국민사과를 앞두고 연희동측은 이날 오전 10시40분께 노태우
전대통령 사저앞에서 일일이 언론사와 기자의 이름을 호명, 한명씩 집안으로
들여 보내는등 현장정리에 각별히 신경.

특히 외신기자들까지 출입을 통제, 입구에서 적지 않은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회견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기자들은 밖에 설치된 TV를 통해 사과문
발표내용을 경청하기도.

이날 노전대통령 사저 주변에는 내외신 기자는 물론, 사복경찰등이 대거
몰려 이번 사건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냈으며 발표문 낭독이 끝난 뒤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고 상황을 예의 주시.

< 김호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