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름이 궁금하여 여기 저기 둘러보는 가정에게 문객하나가 어떤
풀들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건 설여나 등라같은데요"

가정이 그 풀의 냄새를 맡아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설여나 등라종류라면 이런 향기가 날 리가 없어"

집안에서 글만을 읽어온 문객들은 자연에 관한 지식은 부족한지 누구
한사람 풀이름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보옥은 진종과 함께 학숙을 다닐때 틈틈이 산과 들로 놀러다니며
하인들로부터 풀이름을 듣고 익힌 터라 이번에도 입이 근질근질하여
견딜 수 없었다.

어디 풀에 관한 지식을 좀 자랑하여 문객들과 아버지를 놀라게 해줄까.

"아버님 말씀이 옳습니다. 저 풀은 설여나 등라가 아닙니다.

향기로 봐서 두약과 형무임에 틀림없습니다"

과연 사람들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어리기 시작했다.

보옥은 발걸음을 옮겨가며 집안 구석구석을 덮고 있는 풀들을 일일이
손으로 가리키면서 설명을 해나갔다.

"저것은 채란이고 이것은 청갈입니다.

그리고 조것은 금등초이고 요것은 옥로등입니다.

저기 자주빛을 띠고 있는 풀은 자운이고 이쪽 파란빛을 띠고 있는
풀은 청지입니다"

풀이름을 척척 알아맞히는 보옥을 따라가며 문객들은 아 이름으로만
듣던 그 풀이 저 풀이구나 하는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정은 보옥이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도 슬그머니 무심한 얼굴로
바뀌곤 하였다.

문객 하나가 보옥에게 질세라 돌층계에 박혀 있는 어느 풀을 가리키며
아는 체를 하였다.

"이건 곽납이로군"

보옥이 얼른 풀이름을 바로잡아주었다.

"그건 곽납이 아니라 자강입니다.

초나라때 굴원이 지은 "이소"나 양나라 소명태자 숙통이 시문들을
엮어 만든 "문선"에 보면 가지가지 이상한 풀들의 이름이 나오지요.

그 중에 곽납이라는 풀이름도 나오는데 세월이 오래 지나다보니
어느 풀이 정말 곽납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사람들이 글에서 읽은
곽납모양과 비슷한 풀을 보면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지요"

아는 체를 했던 문객의 얼굴이 뜨뜻해지는 것을 훔쳐본 가정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이놈아 누가 그런 이야기까지 하랬더냐?"

일행은 회랑을 끼고 걸어들어가 다섯칸짜리 집앞에 섰다.

햇빛을 가리는 차일이 회랑위에 죽 얹혀 있고 창들은 푸른 빛으로
칠해져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