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9일 민주당 박계동의원의 폭로로 밝혀지기 시작한 "노태우
전대통령의 거액의 비자금조성" 파문은 1일 노전대통령의 검찰출두로
귀결됐다.

폭로에서 소환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일은 불과 13일.

이 기간동안 6공 정치권력의 거대한 부패구조와 부당한 권력남용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못했다.

박의원은 지난달 19일 국회 대정부질문도중 "노태우 전대통령이정치자금
4천억원을 시중은행에 분산예치했고 이중 신한은행에 6백억원이 배당됐다"
고 폭로하고 신한은행 서소문지점 3백억원중 1백억원의 차명계좌와
잔고조회표를 증거로 제시했다.

정가를 일시에 비자금 소용돌이에 몰아넣는 충격적인 폭로였다.

20일부터 수사에 착수한 대검중수부는 계좌의 명의대리인인 하범수.종욱
부자와 이우근 전신한은행 서소문지점장등 관련자 6명을 소환, 조사를
벌였다.

이때까지 검찰은 신한은행 3개계좌의 실제주인이 누구인지 밝히지않았다.

전주가 노전대통령임으로 드러난 것은 22일 이현우 전청와대 경호실장이
검찰에 자진출두, "신한은행 3백억원은 노전대통령이 재임중 통치했던
통치자금중 남은 돈"이라고 진술하면서부터.

검찰은 이때부터 신한 동화 상업은행등 시중은행과 금융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본격적인 계좌추적에 착수, 26일께 1천8백8억원의
비자금조성액에 잔고 8백33억원을 찾아냈다.

이과정에서 비자금의 실무관리책임을 맡은 이태진 전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이 24일 검찰에 소환돼 이틀간 철야조사를 받았다.

은닉된 비자금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걷잡을 수없이 확산되자
노전대통령은 27일 대국민 사과성명을 내고 "재임중 기업들로부터 성금을
받아 5천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으며 현재 남은 돈은 1천7백억원"이라고
비자금조성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여론은 더욱 악화됐고 6공 비리를 전면재수사,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계각층에서 제기됐다.

검찰은 이어 동화은행본점에서 "청송회"등 6개 가명계좌에서 8백18억원
을, 신한은행 본점의 3개 차명계좌에서 2백52억원의 비자금을 추가로
확인했다.

30일에는 노전대통령이 신한은행 본점에 예치된 비자금 3백69억원을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을 통해 실명전환한 사실을 밝혀내고 정씨를
출국금지조치했다.

또 이날 오전 안영모 전동화은행장을 소환, 90-92년 행장재임때 동화은행
본점에 노전대통령의 비자금 1천1백억원을 예치한 사실을 밝혀냈다.

비자금뿐만 아니라 노전대통령의 막대한 부동산과 해외도피자금,
친인척의 새로운 비자금등에 대한 각종 의혹이 야당과 언론에 의해 잇따라
제기되면서 비자금파문은 6공의 총체적 비리로 귀결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대검중수부는 이에따라 그동안의 중수2과 수사팀에 중수3과 수사팀을
추가로 투입하는등 비자금 수사팀을 확대개편하는 한편 노전대통령의
국내외 은닉재산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노전대통령은 30일오전 10쪽 분량의 비자금 소명자료를 검찰에 제출
했으며 소명자료를 검토한 검찰은 30일오후 노전대통령에게 1일오전
10시까지검찰에 나와줄 것을 구두로 통보했다.

노전대통령은 수백명의 내외신 보도진과 전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지켜보는가운데 전직대통령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1일오전 9시45분께
검찰에 출두했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천문학적 금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재산을 교묘하게
은닉한 최고권력자의 검찰소환은 13일간의 짧은 수사기간에도 불구,
년년세세 거듭되는 한국정치사의 나이테에 또 하나의 시꺼먼 옹이를 남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