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시장이 오전10시나 11시에 이르렀다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시장은
새벽 3~4시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에 진출한 한 한국기업인은 현지 기업환경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한다.

때문에 이곳에는 미처 물러가지 못한 어둠이 있지만 새날을 기대하는 희망
이 있다.

지난해 4월 역사적인 선거혁명으로 탄생한 만델라정부는 흑인들의 복지
확대를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 경제 회생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현재 남아공의 경제는 지난 6년만에 가장 호조를 보이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로 각국의 제재를 받으면서 89년부터 92년
까지 마이너스 성장에 머물다가 93년 중반부터 되살아나 지난해 실질성장률
2.3%를 기록했다.

또 금년에는 3%, 96년에는 4%가 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물가상승률을 금년 9%, 96년 9.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수치는 선진국 수준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만 남아공으로 볼때 72년 이후
최저치이다.

특히 식품의 경우 이보다 훨씬 낮은 2~3% 상승에 그쳐 국민들의 체감물가는
더욱 낮게 느껴지고 있다.

만델라정부는 출범후 좌익에 기울어졌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당에서
공산주의 색채를 제거했다.

정부지출을 줄이는 긴축정책을 단행하는 한편 흑인들의 빈곤퇴치와 국가
경제성장을 목표로한 재건개발계획(RDP)에 착수했다.

RDP는 공공사업확대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발전을 도모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로써 33%(정부발표)혹은 50%이상(IMF집계)되는 높은 실업률을 해소
하겠다는 것이다.

RDP추진 결과 지난해 전력화사업에서는 목표를 초과달성, 37만8천가구에
전기시설을 보급했다.

학교급식도 5백만명에게 돌아갔고 병원시설도 대거 신.증축돼 전년보다
4배이상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

지난 3월에는 이중환율구조를 철폐함으로써 외자유입을 촉진시켰다.

외자유입규모는 지난해 7월부터 금년8월까지 약 52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국내신용확대에 기여, 같은 기간 은행대출은 전년동기대비 20%
늘었다.

새 정부는 또 경제개혁을 본격추진할 기구로 "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했다.

이 기구는 거시경제정책을 검토하고 경제개혁의 핵심인 경쟁정책, 관세
인하, 기업의 민영화, 관료제 일소, 외국투자유치 등을 추진하게 된다.

만델라가 직접 주재하는 이 위원회에는 부통령, 통산부장관, 재건개발계획
장관, 최대인종인 줄루족을 대변하는 잉카타자유당의 당수등 이른바 실세들
이 참가하게 된다.

이같은 활기찬 경제정책추진은 만델라가 "아시아식 성장"을 정책목표의
1순위로 채택한데 있다.

백인정권의 유럽편향 정책에서 탈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흑인들을
재건에 동참시키려는 것이다.

남아공을 물류와 마케팅 중심지로서 명실상부한 "아프리카의 관문"으로
변모시키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상을 현실화하는데는 외국자본이 필수적이다.

만델라대통령은 지난 9월 요하네스버그에서 국내외 기업인과 정치인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투자관련 회의에 참석, "투자환경이 무르 익었다"고
역설했다.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은 남아공이 정치적인 안정, 민주화의 가속과 함께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취임후 만델라의 한국 일본 유럽등 해외 순방은 대부분 투자유치가 주목적
이었다.

방한기간중에도 우리 경제인들과 만나 RDP사업에서 주택건설사업 참여와
투자를 적극 요청했다.

일본 방문에서는 차관제공 약속을 얻었고 유럽방문기간중에는 유럽기업들에
통신사업에 적극 나서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이에대해 서방세계를 비롯한 각국은 남아공에 호의적인 눈길로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델라정부의 앞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우선 5년내 최소 1백만호의 서민주택을 건설하는등 총1백10억달러가 소요
되는 RDP사업에 충당할 재원확보가 문제이다.

RDP사업의 핵심인 서민주택건설은 정부재정의 부족으로 기대에 훨씬
못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삼성물산 현지지사 판매총책임자인 존 블롯만씨는 "RDP는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이 없는 정치인들의 약속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부채축소와 장기외자도입의 한 방편인 "공기업 민영화"작업도 흑인
기업가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는 노조를 비롯한 반대세력으로 착수되지
못하고 있다.

외자유입의 역기능으로 "금융부실화"도 심화되고 있다.

은행들은 고금리(약16%)로 신용지불능력이 약한 흑인들에게 부실대출을
확충, 지난 9월에는 남아공 첫 흑인경영 은행이 파산했다.

크리스탈스 중앙은행총재는 이와 관련, "핫머니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심화돼 은행들의 신용지불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공개 경고했다.

인구의 13%인 백인층이 구매력의 55%를 보유하고 농경지의 87%를 차지하는
왜곡된 경제구조도 큰 문제다.

일례로 남아공 최대의 앵글로아메리칸 그룹은 상장주식전체의 절반 이상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극렬한 정치폭력과 범죄가 투자를 저해하는 더 큰 요인이다.

자치를 요구하는 흑인 줄루족과 ANC가 충돌하고 있는 콰줄루-나탈주에서는
9월 한달간 4백여명이 살해됐고 전국적으로 범죄도 늘고 있다.

때문에 만델라정부의 성패는 바로 범죄와 폭력퇴치에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처럼 명암이 엇갈리는 분위기에서도 이 시장을 찾는 발길은 최근 더욱
늘어나고 있다.

남아공이 남부아프리카 11개국 GDP의 80%를 차지하고 항구와 철도 등이
집결한 "아프리카의 교통요충지"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또 금 크롬 백금 생산량은 세계1위, 아프리카 철강의 66%, 공산품의 40%를
생산하는 이 지역 최대의 자원부국이자 경제대국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보츠와나등 일부국가와 맺은 관세동맹을 여타 아프리카
국가로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리적으로는 대서양과 인도양의 교차로이며 미주 유럽 인도 등을 연결하는
중간기지 역할도 가능하다.

"남아공은 이제 막 깨어나는 시장이어서 위험도가 크다. 그러나 <>자원의
보고 <>아프리카진출의 발판 <>대서양과 인도양의 건널목이란 점에서 우리
기업도 "장기적인 전략"을 갖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KOTRA 요하네스버그
무역관 윤광덕관장은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