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바깥에서 보던 느낌하고는 사뭇 다른데"

가정이 바깥에서 볼때는 멋없이 싱겁기만 한 집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뀐 듯하였다.

"음, 여기서 차를 달이면서 거문고를 뜯으면 그 운치가 그만이겠군.

온 집안이 향을 피운 듯이 그윽한 향기로 가득 차겠지.

별로 꾼민 바가 없어도 이렇게 색다른 멋을 내다니 이 집도 보통집이
아니군.

편액에 써넣을 이름도 걸작이 되어야겠지"

가정이 문객들을 돌아보자 그들은 어느새 이름을 지을 채비를 하였다.

"난풍혜로가 어떻겠습니까?"

한 문객이 풀 중의 풀인 난초를 빌려 이름을 지어보았다.

난풍혜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난초와 이슬이 맺힌 혜초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 나쁘진 않군요.

그럼 그 이름에 맞는 대련을 누가 한번 지어보시죠"

가정의 말에 다른 문객 한 사람이 나서며 대련을 지었다.

난초 향기는 저녁해 비끼는 뜨락에 가득하고 두약 향기는 달 밝은
물가에 그윽하네 그리고는 그 문객이 사람들에게 자기가 지은 대련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몇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저녁해 비끼는 뜨락 같은 구절은 너무 감상적인 것 같습니다"

대련을 지은 문객이 변명삼아 중얼거렸다.

"옛 시에 보면, "뜨락에 우거진 미무풀 저녁해 바라보며 흐느끼네"라는
구절도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그 옛 시가 더 감상적이지 않으냐는 투였다.

또 다른 문객이 대련을 지어 사람들의 평가를 받았다.

오솔길 향긋한 바람이 옥혜풀 희롱하고 뜨락의 교교한 달빛 금란초에
어리네 "난자와 혜자가 있어 난풍혜로라는 편액에 잘 어울리겠습니다"

그 대련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보옥만은 가만히 고개를 젓고 있었다.

가정이 그런 보옥의 고개짓을 그냥 보아 넘길리 없었다.

"이놈아, 그럼 네가 대련을 지어봐"

보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는 난초가 없으니 편액에 난초 어쩌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라고 있는 형무와 청지 같은 풀이름을 따서 "형지청분"이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형지청분은 형무와 청지의 그윽한 향기라는 뜻이었다.

그 다음 거기에 맞게 보옥이 대련을 지었다.

두구풀 읊은 시 오히려 아름답고 도미풀 꿈결에 봐도 향기롭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