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와 대우그룹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을 실명전환해 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세청이 보유하고 있는 고액실명전환자 리스트에 관심이 집중
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검은돈의 조성경위
와 사용처가 낱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고액전환자에 대한 자금출처조사가 언제부터, 어떤 강도로 벌어지느냐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그래서다.

한보와 대우그룹이 노전대통령의 자금을 실명전환해준 시점이 실명전환기간
(93년9,10월)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국세청이 사전에 이같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국세청은 이 기간중 실명전환된 3천만원이상의 고액자료를
이미 금융기관으로부터 모두 통보받아 놓았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의 전환자료 통보가 늦어도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모두 끝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국세청은 그동안 이같은 검은돈의 실명전환 내역을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세청은 그동안 계속 "자료를 인별 직업별 소득별로 분류중"이라고만
밝히고 자금출처조사는 착수하지 않았다고 밝혀 왔다.

그러나 이미 자료 통보가 완료된지 1년이 넘어 대략적인 실태파악은 끝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다.

특히 수십억원대의 고액 자료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내용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자금을 한보나 대우등이 실명전환했는지는 몰랐더라도
최소한 "의심이 가는 자금"을 이들 기업이 실명전환했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자금출처조사가 미뤄진 이유에 대해 국세청은 "워낙 자료가 방대해 분석에
시간이 걸린다"고 공식적으로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운 구석이 많다.

국세청 한 관계자도 "언제 조사해도 조사할수 있는데 서두를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해 대략적인 분석이 끝났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국세청이 노씨의 실명전환을 도와준 기업들의 명단을 이미 확보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밝힐 경우 생길수 있는 엄청난 파장을 고려, 아직
자금출처조사를 착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터트리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번 국세청 대한 국정감사에서 추경석청장은 거액실명전환 자료와 관련,
"빠른 시일내에 조사에 착수할 것이나 금융시장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겠다"고 말해 묘한 뒷맛을 남겼다.

신한은행의 계좌등 차명상태로 남겨두었던 계좌에 대해서는 국세청이 파악
할수 없으나 적어도 기업명의나 그룹총수 명의로 실명전환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모든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어느 대기업과 오너가 얼마만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실명노출을
숨기고 싶었던 자금을 누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가 한눈에 드러나게 돼
있다는 얘기다.

''법대로'' 탈세나 뇌물여부를 가리자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게 불을 보듯
확연하다.

고액실명전환자에 대한 국세청의 자금출처 조사가 그만큼 큰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노전대통령 비자금이 사건화되지 않았더라도 국세청이 하도록
돼있는 고액 실명전환자에 대한 자금출처조사 과정에서 이번 사건은 터지게
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측의 ''의도''가 작용한다는데 있다.

국세청이 신중을 기하는 이유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파장이 클수밖에
없는 사안인 만큼 조사기준과 시기가 보다 분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
이 많다.

< 김선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